티스토리 뷰

계 1:19은 119 구급차에 비유할 수 있다. 119 구급차를 타면 복잡한 병원 수속이나 입원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응급실로 이송되어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계 1:19은 그 삼중 구조가 마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계 1:19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세 부분의 의미에 대해 많은 주석가들의 의견이 다양하지만 그러나 계 1:19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는 다 동의한다. 사도 요한의 시대에 살고 있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동일하게 계 1:19의 구급차를 타고 곧장 미래에 있을 일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와 환상으로 (계시록 4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마치 곧장 응급실로 직행하여 의사의 진료를 받듯이 말이다.

 

 

 

 

계 1:19에 대한 비교적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설명을 제공하고 있는 페터슨의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계 4장의 주석에 앞서 Introduction에서  7. The Key to the Book 이라는 도입부를 통하여 계 1:19에 대한 개괄적 이해를 제시한다. NAC 주석의 해당 부분을 그대로 옮겨 설명한다.

 

 

7. The Key to the Book

 

"Write, therefore, what you have seen, what is now and what will take place later" (1: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개역개정)

 

Commentators differ sharply about the significance of 1:19.

 

Charles observes,

These words summarize roughly the contents of the Book. The ἃ εἶδες [ha eides] is the vision of the Son of Man just vouchsafed to the Seer: ἃ εἰσίν [ha eisin] refers directly to the present condition of the Church as shown in chaps. ii.–iii., and indirectly to that of the world in general; ἃ μέλλει γίνεσθαι μετὰ ταῦτα [ha mellei ginesthai meta tau͂ta] to the visions from chap. iv. onwards, which, with the exception of a few sections referring to the past and the present, deal with the future.53

 

Charles의 관찰에 의하면, 이 구절은 이 책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ἃ εἶδες [ha eides, 하 에이데스]는 환상을 본 자(요한)이 우연히 마주치게 된 인자에 대한 환상이다:  ἃ εἰσίν [ha eisin, 하 에이신]은 2-3장에서 보여지는 교회의 현재 상황이며 또한 간접적으로는 일반적인 세상의 상황에 해당한다; 그리고  ἃ μέλλει γίνεσθαι μετὰ ταῦτα [ha mellei ginesthai meta tau͂ta, 하 멜레이 기넷싸이 메타 타우타]는 4장 이후의 환상에 해당하는데 과거와 현재를 언급하는 몇 개의 섹션을 제외하고는 미래를 다룬다.53

 

Smalley sees 1:19 as more "wide ranging" but acknowledges that the phrase "the things which are after these things" essentially focuses on the future.54 

 

Smalley는 1:19을 좀 더 "넓은 범위"로 보지만 그러나 "장차 될 일"은 기본적으로 미래에 초점이 있다고 인식한다.54 

 

Chilean priest and theologian Pablo Richard identifies "the things that come after" as the content of Revelation 4 to the end of the book.55 

 

칠레의 성직자이며 신학자인 Pablo Richard는 "장차 될 일"을 요한계시록 4장부터 마지막 장의 내용이라고 한다.55 

 

Thomas adds,

The interpretation that understands a three-part division of 1:19 sees the past vision of the glorified Christ (chap. 1, esp. vv. 11–18) pointed out by ha eides as the first part, the present condition of the churches (chaps. 2–3) indicated in ha eisin as the second part, and the third part, the future happenings (chaps. 4–22) represented by ha mellei genesthai meta tauta. This position is represented in the words, "Write, then, the things which you have seen and the things which are and the things which will happen after these things."

 

Thomas는 덧붙이기를,

계 1:19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존귀케 된 그리스도 (계 1장, 특히 11-18절)는 [하 에이데스]의 첫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고, 교회의 현재 상황 (계 2-3장)은 [하 에이신]의 둘째 부분이며, 셋째 부분인 미래의 일들은 [하 멜레이 기넷싸이 메타 타우타]에 나타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는 말에 드러나 있다.

 

The threefold division is the most natural understanding of the symmetrical grammatical construction of 1:19 and fits the contents of the Apocalypse quite well. Eides, an aorist tense, is best explained as looking back to the vision of Christ that is now past (contrast blepeis, present tense, in 1:11). "The things which are" (ha eisin) is accurate as a description of the messages to the seven churches that detail specific conditions in the churches of John's day and throughout the period until the events foretold in 4:1 ff. begin to unfold. The similarity of ha mellei genesthai meta tauta to ha dei genesthai meta tauta of 1:1 (see earlier discussion at 1:1) and 22:6 and to ha dei genesthai meta tauta of 4:1 is strong evidence that the third relative clause of 1:19 points to chapters 4–22, which constitutes the main body of the book (Swete; Charles; Smith). It is natural that this is the longest of the three sections.56

 

삼중의 구분은 계 1:19의 대칭적이고 문법적인 구성에 대한 가장 자연스러운 이해이고 계시록의 내용과도 꽤 잘 어울린다. 부정과거시제인 [에이데스]는 [1:11의 현재시제 blepeis, 네가 보는]과는 대조적으로 그 시점에서는 과거인 그리스도의 환상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가장 잘 설명된다. "지금 있는 일" (ha eisin)은 요한의 시대와 동시에 4:1 상반절에서 예언된 사건들이 펼쳐지기 시작할 떄까지의 기간에 걸친 교회들의 특정한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는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묘사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ha mellei genesthai meta tauta"의  1:1과 22:6, 그리고 4:1의 유사성은 1:19의 세 번째 관계절은 4-22장을 가리키는 강력한 증거이며, 이 부분이 이 책의 본문을 구성한다. (Swete; Charles; Smith) 세 부분중 이것이 가장 긴 것은 당연하다.56

 

 

W. A. Criswell, in his three-year preaching journey through the Revelation, is more emphatic and certain about this interpretation than most. Appealing to Aristotle in a single sermon on 1:19, Criswell finds similar constructions and utilizes them to argue for a threefold division of the apocalypse.57

 

W. A. Criswell은 그의 3년에 걸친 요한계시록 설교에서 대부분의 해석가들보다 더욱 강조적이고 확고하다. 1:19 한 절만을 본문으로 아리스토틀의 방식에 의거하여 행한 설교에서 크리스웰은 유사한 구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계시록의 삼중적 구분을 주장하기 위해 활용하였다.57

 

Aune admits the formula arises from widespread tripartite (셋으로 나누어진) prophecy but concludes that it probably actually means only the present and the future.58 

 

아우내는 널리 퍼진 셋으로 나누어진 예언에서 발생하는 공식을 인정하나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는 다만 현재와 미래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결론짓는다.58 

 

Caird thinks this approach is a "grotesque oversimplification."59

게어드는 이런 접근법은 "기괴하고 지나친 단순화"라고 생각한다.59

 

Blount acknowledges the three divisions but sees "what will take place later" as pertaining (=belong)

to the certain reprisals that will come when Christ-believers "out themselves" as Christ-believers by testifying demonstrably to his lordship. The "after this" that closes the verse, then does not refer as much to "this apocalyptic age" as it does to the specific circumstances surrounding the aftermath of John's visions of Christ's lordship and the people's testimony to it.60

 

Blount는 세 구분을 인정하나 "장차 될 일"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의 주권에 대해 명백하게 증거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을 벗어났을' 때 도래할 특정한 인과응보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이 절을 끝내는 "이것 후에"라는 말은 "이 계시의 시대"를 가리키기 보다는 요한이 본 그리스도의 주권과 사람들의 그에 대한 증언이라는 환상 이후(의 시대)를 둘러 싼 특정한 환경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60

 

Beale, always in heavy pursuit of eclecticism, attempts to have a little of both ways. He accurately links the idea of the apostle to Dan 2:28 and the revelation of what must take place in the latter days. After a lengthy discussion he arrives at what he calls the "new view," which, while acknowledging the general futurist intent of the Apocalypse, pleads for a position that eval‎uates the whole prophecy and hence 1:19 also, in the now popular "already—not yet" formula. Accordingly, he would hold that all three aspects of the verse reflect that understanding.61

 

Beale은 늘 절충주의를 집요하게 추구하면서 두 방식의 것을 약간씩 취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정확하게는 사도(요한)의 개념인 요한계시록의 후일에 반드시 일어날 일을 다니엘서 2:28과 연결짓는다. 긴 토론 끝에 그는 자신이  '새로운 관점'이라고 부르는 것에 도달한다. 그는 계시의 일반적인 미래주의적 의미를 인정하면서 전체 예언을, 당연히 1:19 역시 현재 인기있는 "이미-아직"의 도식으로 평가하는 입장을 호소한다.  따라서 그는 이 구절의 세 측면 모두 그런 이해를 반영한다는 입장일 것이다.61

 

This commentator acknowledges the "already—not yet" character of the kingdom of God and of the eschaton. That stated, the location of the affirmation of 1:19 and natural sense of the verse seem strongly to favor seeing the verse as the logical division of the contents of the book.

While the material in chaps. 4–22 contains flashbacks to historical events (12:7–9) and contemporaneous events (John's frequent participation in his own visions), the essential information concerns the future. In fact, since chaps. 1–3 focus on the churches and the word church never occurs after chap. 3, there is good reason to believe that chap. 4 initiates an era following the "times of the Gentiles" (Luke 21:24) or the age of the church.

 

이 주석가는 하나님의 나라와 종말의 "이미 - 아직"이라는 특성을 인정한다. 즉, 1:19을 선언하고 있는 위치와 구절의 자연스러운 의미는 이 구절이 책 내용을 논리적으로 구분한다는 점에 강하게 찬성하는 것 같다.

한편 4-22장의 자료는 역사적 사건을 되돌아보는 내용과 (계12:7-9) 요한의 동시대 사건을 (요한은 자신의 환상 속에 자주 직접 참여한다) 포함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정보는 미래와 연괸된다.  사실, 1~3장은 교회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교회라는 단어는 3장 이후에는 나오지 않으므로, 4장은 "이방인의 시대" (누가복음 21:24) 또는 교회 시대 이후의 시대를 열고 있다고 믿는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계]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계] 12: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계]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눅] 21:24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For John to write what he had seen is logically the vision of the Christ in chap. 1. The things that are clearly represent the church scene in which the prophet was a participant. Looking beyond that era introduces God's plan for the last days. Hence 1:19 may be viewed as the general outline for the Apocalypse.

 

요한이 자신이 본 것을 쓴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1장의 그리스도의 환상이다. 지금 있는 일은 분명히 이 예언자가 참여하는 교회의 장면이다. 그 시대를 넘어서 보는 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날에 대한 계획을 소개한다. 그러므로 1:10은 계시록의 일반적인 개요로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페터슨의 견해는 매우 중립적이고 논리적이며 문법적이다. 또한 요한 당시의 독자들, 그러니까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의 시각도 고려한 역사적 견해이다. 하나님은 당연히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과 그리고 그들의 믿음의 후손들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러한 사명을 주기 위해, 그리고 이 일의 중요성과 하나님이 친히 계획하신 일임을 보이시기 위해 요한을 천상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아모스3:7-8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요한계시록 1:19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신 모든 일들, 즉 인류 구속의 사역과 그 과정을 말씀하고 계시며, 그리고 고난과 박해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앞으로 교회와 성도가 겪으며 인내하고 승리해야 할 모든 하나님의 계획들을 미리 사도 요한을 통해서 보여주심으로 이를 반드시 실행하시고 성취하실 것임을 계 1:19는 말하고 있다. 여전히 지상의 요한에게 환상을 통하여 보여주셔도 될 일을 하나님은 그를 천상으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도 병약한 지금의 신자들을 구급차에 태우고 친히 천상의 응급실로 강권적으로 부르시는 것은 아닐까? 그 구급차를 타고 가다 보면 하늘에 열린 문이 보임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24장로들과 모든 천상의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며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어찌 황홀경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환상과 계시를 통하여 주님 다시 오실 그날이 비록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확실한 것임을 우리는 믿는다. 지금도 우리는 요한계시록 4-5장을 읽으면서 하늘의 궁전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 우리 영혼의 소생과 복구된 믿음의 힘으로 승리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모든 능력을 얻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감격된 일인가!

 

 

---------------------------------

 

53 Charles,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33.

 

54 S. S. Smalley, The Revelation to Joh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of the Apocalypse (Downers Grover, IL: InterVarsity, 2005), 56–57.

 

55 P. Richard, Apocalypse: A People's Commentary on the Book of Revelation (Maryknoll, NY: Orbis Books, 1995), 52.

 

56 Thomas, Revelation 1–7, 115.

* 필자 주: 참고로 네 곳의 원문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1    ha dei genesthai en taxei

1:19  ha mellei genesthai meta tauta

4:1    ha dei genesthai meta tauta

22:6  ha dei genesthai en taxei

 

57 W. A. Criswell, Expository Sermons on Revelation: Five Volumes Complete and Unabridged (Grand Rapids: Zondervan, 1969), 1:181–83.

 

필자 주: 크리스웰의 해당 설교 중 이 부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전략)

Now, in the first century AD, there was a brilliant Greek scholar by the name of Andronicus who lived in Rhodes, a famous and ancient Greek city.  And Andronicus, in the first century AD, took all of the great numerous prolific writings of Aristotle and he arranged them, he compiled them, he edited them.  And the first thing Andronicus did was this: he put together everything that Aristotle had written that concerned the physical world, and he called it Ta Physica, the physical, the natural.  And in that, he put down all of Aristotle’s observations about the stars in the sky, and about the plants on the ground, and animals that lived, and the weather that changed; all of the things that were physical, he put together in the first part. 

Now Aristotle not only wrote down many observations concerning plants, and animals, and stars, and weather, and things physical, but Aristotle was a great, penetrating philosopher.  And he wrote many things and made many observations concerning things that were not physical, such as, the science of learning, and the nature of being, and of existence, and things concerning logic, and things concerning the first cause and genesis; and speculations on the existence of God.  He had a whole lot of things that were not physical. 

So Andronicus, when he edited Aristotle’s work, he put everything Ta Physica in those parts at the front that had to do with nature.  Then he took all of Aristotle’s writings that had to do with things that were not physical, and he put them together at the last part of his edition and called them Ta Meta Ta Physica – Ta Meta Ta Physica.  Meta, there is that same thing; meta, that is things "beyond" the physical.  Metaphysical, you have it in your English language – metaphysical, metaphysical, things intangible – things beyond the physical.  These are physical things that Aristotle wrote of; now, these are things beyond the physical, meta-physical.  And that’s the way Andronicus edited Aristotle’s work. 

            Now, that’s the identical and exact meaning of the word here, "You write the things that thou hast seen" [Revelation 1:19].  And that is in the first chapter of the vision of Christ [Revelation 1:12-18].  "And then write down the things that are [Revelation 1:19],and the seven lampstands are the seven churches" [Revelation 1:20].  So he writes down the churches [Revelation 2:1-3:22].  You – the church of the tomorrow, the church until Jesus comes again – "the churches" [Revelation 2:1-3:22].  And then finally, he is commanded to write down the things which shall be meta tauta, the things "beyond" the churches [Revelation 1:19], the things after the churches are taken away, the things after [Revelation 4:1-22:21].  God’s people are caught up with the Lord in glory and when I turned to the Revelation, it is exactly like God has outlined it. 

First the vision [Revelation 1:12-18], second the things of the church [Revelation 2:1-3:22], and then – beginning at chapter 4 – the things "beyond," meta, over; the things after the things of the churches [Revelation 4:1-22:21].  And when you come to the fourth chapter of the Book of the Revelation [Revelation 4:1], that second section ends forever; it is never referred to.  The word, "church" is never mentioned again, it is never referred to.  It is never described; it is never discussed; it does not exist down here in the earth, it is caught away.  There is no reference to the church beginning at chapter 4 because God is writing of things meta – beyond, "after" the churches [Revelation 1:19].  And that, ooh, oooh!  Oh, oh!  When we come to the first chapter of the Book of the Revelation, when we come to the fourth chapter [Revelation 4:1], thereafter we find God’s dealings with Jew and with Gentile in their awful and furious time that the Book calls the "great tribulation" – the tribulation, the great – Revelation 7:14.  You have it translated here in the King James Version, "These are they, which come out of great tribulation."  No!  Lest John think anybody might mistake what he’s talking about, he called it the tribulation, the great; just like somebody might translate that "great tribulation."  It is the great tribulation, the one great time when God shall take this earth and shake it like a mouse shaken in the paw and in the mouth of a big cat.  God is not done with this world.  And God is not done with the infidel, and God is not through with the unbeliever, and God is not done with the atheist, the agnostic, and those who shout defiance in the name of God.  There is coming a day, there is coming a time, when God shall deal with the unbeliever by person – person to person! [Revelation 20:12].

(이하 생략)

 

츨처 : wacriswell.com/sermons/1961/god-s-outline-of-the-apocalypse/

 

God's Outline of the Apocalypse

Write the things which thou hast seen, and the things which are, and the things which shall be hereafter;

wacriswell.com

 

 

 

58 D. Aune, Revelation 1–5, WBC 52a (Dallas, TX: Word Books, 1997), 105.

 

59 G. B. Caird, The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HNTC (San Francisco: Harper & Row, 1966), 26.

 

60 B. K. Blount, Revelation: A Commentary, NTL (Louisville, KY: WJK, 2009), 47.

 

61 Beale, The Book of Revelation, 153–70.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