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Καὶ εἶδον ἐπὶ τὴν δεξιὰν τοῦ καθημένου ἐπὶ τοῦ θρόνου βιβλίον γεγραμμένον ἔσωθεν καὶ ὄπισθεν κατεσφραγισμένον σφραγῖσιν ἑπτά.
(Kai eidon epi ten dexian tou kathemenou epi tou thronou biblion gegrammenon esothen kai opisthen, katesphragismenon sphragisin hepta.)
"And I saw on the right hand of the one sitting upon the throne a scroll written [upon], inside and on the back, sealed with seven seals"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이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 사항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사항들은 앞으로 (계시록 6장부터) 펼쳐지게 될 내용들의 성격을 결정하게 될 중요한 지표들이 되기 때문이다.
첫째, 비블리온이 두루마리인가 아니면 책(코덱스)인가?
두루마리는 개역개정의 번역이다. NIV는 이를 scroll로, 개역은 '책'으로 번역했다. 이것이 둘둘 말린 형태의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기록된 두루마리인지, 아니면 책의 초기 형태인 코덱스(codex) 인지는 의견 일치가 없다. 코덱스로 보는 이들은 Zahn 과 Charles, Moffatt 등이다.
- Theodor Zahn,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3 vols., trans. John Moore Trout et al. (Grand Rapids: Kregel, 1953), 3:405-6; Charles, Revelation, 1:137; Moffatt, "Revelation," 5:382-83.
이를 책과 같은 codex로 보는 견해는 이 책이 하나님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손에 쥐어져 있다고 여긴다. Moffatt 과 Beckwith 는 이것이 책이라면 손 위에 올려져 있기가 힘들기 때문에 쥐어져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James Moffatt, "The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in The Expositor's Greek Testament, ed. W. Robertson Nicoll (Grand Rapids: Eerdmans, n.d.), 5:383; Isbon T. Beckwith, The Apocalypse of John (New York: Macmillan, 1919), p. 507; R. C. 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John's Revelation (Columbus, Ohio: Lutheran Book Concern, 1935), p. 192.
하지만 Swete 과 Charles, 그리고 Robertson 은 전치사 ἐπὶ (τὴν δεξιὰν)의 용법과 손바닥을 오목하게 모으면 책이라 해도 어려움 없이 올려 놓을 수 있으므로 굳이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 Henry Barclay Swete, The Apocalypse of St. John (London: Macmillan, 1906), p. 75; Beckwith, Apocalypse, p. 507; A. T. Robertson, Word Pictures in the New Testament, 6 vols. (Nashville: Broadman, 1933), 6:332.
비블리온이 두루마리인지 아니면 책인지의 문제는 독자들이 누구인가와 또 그들이 어떤 것에 익숙한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구약적 문화와 이해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두루마리로 인식될 것이고 책과 같은 형태의 코덱스에 기록된 성경을 본 사람들에게는 코덱스로 인식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21세기의 성도들에게는 둘 다 어색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둘 모두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명 책' 이라는 개역과 개역개정의 번역을 보면서 그것이 두루마리든지 책이든지 상관 없이 모두 다 구원 받을 성도들의 명단이라고 인식한다. (개역, 시 69:28 <쎄페르, 두루마리>; 빌 4:3 <비블로스, 파피루스>; 계 3:5 <비블로스>; 13:8 <비블리온, 두루마리>; 17:8 <비블리온>; 20:12 <비블리온>, 15; 21:27 <비블리온>)
이보다는 오히려 기록된 것의 형식, 즉 계약서인가 아니면 유언장인가 등의 문제가 일곱 인으로 봉해졌다는 개념과 연결되어 봉인의 목적이 감추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위조나 변조를 막기 위한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더 관심을 끈다.
둘째, 비블리온에 쓰여진 내용은 무엇인가?
토마스(Robert L. Thomas)는 Revelation 1-7, Wycliffe Exegetical Commentary 에서 이 두루마리가 계시록의 나머지 부분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았다. 전천년적 입장에서 계시록의 본문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며, 계시록이 장차 있을 역사의 마지막 일에 대한 계시, 특히 10절에서 말하는 성도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비밀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이다. 토마스는 다음 여섯 가지 견해를 소개한다.
(1) 계 20:1에 약속된 왕국은 렘 31:31-34의 언약의 성취이므로 이 비블리온은 새 언약의 책이라는 견해. 하지만 예레미야의 새 언약은 은혜의 언약인데 계 5:1의 비블리온의 내용은 심판의 것이므로 타당하지 않다.
(2)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유업으로 주신다고 보장하신 계약이나 유언으로 보는 견해. 특히 계 5:9-10에서 말하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그 피로 사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왕 노릇하게 하신 것을 가리키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견해의 약점은 5장 말고는 계시록의 다른 곳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3) "어린 양의 생명책"으로 보는 견해. 하지만 일곱 봉인이 떼질 때 환란이 나타난다는 점은 이 견해와 맞지 않는다.
(4) 구약에서 희미하게 계시되고 신약에서 완성되는하나님의 구속 계획으로 보는 견해. 이 견해 역시 봉인이 해제될 때 환란이 시작되는 점에서 과거의 내용과는 상관이 없고 미래의 일들과 관계되며, 따라서 6장 이후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5) 그리스도의 직임 및 언약의 행위로 보는 견해.
(6) 마지막으로 6장 이후에서 계시되는 환상들을 가리킨다는 견해. 당연히 토마스는 이 견해가 맞다고 한다.
- 이에 대한 제안 학자들이나 보다 더 자세한 설명은 그의 책을 보라.
G. K. Beale 은 그의 NIGTC 주석에서 다음 네 가지를 소개한다.
(1) 구원의 책, 특히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기록된 참 선지자들의 이름이 있는 "어린 양의 생명책"으로 보는 견해
(2) 구약의 두루마리를 대표하는 구약 성경으로 보는 견해
(3)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때까지의 미래의 대환란으로 보는 견해
(4)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계획이라고 보는 견해
그는 이 중에서 (4)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이것을 좀 더 확장하여 "유업에 대한 언약적 약속 (A Covenantal Promise of Inheritance)"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것을 유업의 상속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창 1:28에서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다스리라"는 약속(아담 언약)을 주셨다는 점을 든다. 아담은 범죄하여 '실낙원' 했으나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가 이 언약을 성취하여 '복낙원' 할 것이며, 특히 비블리온의 인봉은 이 언약이 인간인 아담에게 주었던 것이므로 인자이신 그리스도가 떼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 부분의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The “book” in ch. 5 should be understood as a covenantal promise of an inheritance when seen in the light of the above two identifications of the “book” and of the broader theological context of the Apocalypse concerning paradise lost and regained (cf. 2:7; 3:12; 22:1–5; see also on 12:14–17; 13:3). God promised to Adam that he would reign over the earth. Although Adam forfeited this promise, Christ, the last Adam, was to inherit it. A human person had to open the book because the promise was made to humanity
- Beale, G. K. (1999). Th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pp. 340–341). Grand Rapids, MI; Carlisle, Cumbria: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이러한 빌의 견해와 토마스의 견해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계시록 6장 이후의 내용은 옛 하늘과 옛 땅의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의 건설로 크게 둘로 나뉜다. 이것은 빌이 말하는 실낙원(의 심판)과 복낙원(의 건설)이다. 두 학자 모두 공통된 사항을 각기 다른 용어로 표현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는 당연히 죄에 대한 심판과 이기는 자에 대한 상급이 포함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Covenant)이요 약속(Testament)이다.
그 외에도 비블리온에 인팎으로 글자들이 쓰여져 있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와 비블리온을 일곱 인으로 봉한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의 문제를 더 논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비블리온이 두루마리인가 코덱스인가, 또 그 형식은 무엇인가, 그리고 거기에 기록된 내용을 무엇이라고 보는가에 종속된 논의점들이다. 예를 들면 비블리온을 어린 양의 생명책으로 보면 거기에 수록된 구원받을 자의 명단은 제한이 없어야 하므로 이런 사실을 안팍으로 기록했다고 표현했다는 견해, 또 비블리온이 두루마리라면 그 길이가 제한이 되어 안쪽에 다 기록하지 못해서 바깥쪽에도 기록했다는 견해 등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어느 시대 누가 읽더라도 동일한 은혜와 능력을 가진다. 다만 읽는 이의 인종적, 문화적, 그리고 시대적 배경에 따라 그 이해의 깊이와 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은혜와 능력은 변하지 않는다. 읽는 자에 따라 성경이 말하는 구체적인 시사점은 달라진다. 또 그래야 한다. 우리가 1세기의 성도의 입장에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 비록 어렵고 까다롭지만 그러한 내용으로부터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는 신명기의 고별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신 30:19–20)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신 31:13)
여호수아도 그의 고별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4–15)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수 24:19–20)
사도 요한도 그의 계시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3:5)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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