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ible/5분 말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사도행전 1:4

by 구봉환 2021. 2. 20.

지구촌 교회의 원로목사인 이동원 목사의 사도행전 강해설교집의 첫 장은 "그리스도인의 우선순위"라는 제목으로 시작합니다. 이동원 목사는 "꿈"이라는 키워드로 사도행전의 첫 장을 접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라는 제목의 서문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 전략...

누가 이 무식한 젊은이들에게 세계의 꿈을 안겨다 주었을까. 누가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다가오는 이 나라의 비전을 말할 것인가, 하나님 나라의 꿈을. 역사의 격동기에 서서 '월드 크리스천'의 비전을 위해 처음 제자들의 피 묻은 발자취를 추적하고 싶었다."

 

그는 예수님의 꿈은 하나님 나라였다고 합니다. 그 근거로 사도행전 1장 3절의 말씀을 듭니다. 부활 후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일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달리 제자들의 꿈은 하나님 나라가 아닌 이스라엘의 해방, 그러니까 유대의 민족적 메시아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 보면 부활 후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수가 500여 명이라고 하는 구절로부터 제자들과는 다른 꿈을 가졌던 무리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꿈, 제자들의 꿈, 그리고 무리들의 꿈이 다 달랐다는 점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삶의 우선순위가 자신의 꿈도, 무리들의 꿈도 아닌 예수님의 꿈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성경을 이러한 키워드로 보면 꿈의 연속입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꿈을 주셨습니다. 요셉에게는 해와 달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주셨습니다. 모세에게는 어머니 요베겟이 심어 준 동족 구원의 꿈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은 꿈을 주셨습니다. 그 꿈이 있기에 우리는 성도로서 교회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 중에 하나님 나라 건설이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꿈도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꿈을 이루는 방법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까지 본처 사라가 아들 낳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아들 이삭을 온전히 바치는 것도 포함됩니다. 요셉에게는 애굽에 끌려가는 고통과 노예 생활, 그리고 옥중 생활까지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에게는 젊은 혈기 대신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도 그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4절에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8절에서는 그 성령이 임하시면 비로소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세계 복음화야말로 모든 성도들의 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지상 건설이기도 합니다. 성도라면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방법이어야만 합니다. 군대를 앞세운 십자군 운동도 아닙니다. 자본과 기술을 앞세운 문화 선교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에 의해 이끌리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또한 자신의 꿈을 그 꿈 뒤에 감추어서도 안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 시대와 현 상황에 맞는 하나님의 방법이 주어질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칼빈은 그의 사도행전 주석에서 4절의 '기다리라'는 구절에 대해 전투 시에 내리는 대장의 명령을 언급한 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군대 규정이 요구하는 것처럼, 대장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한 어떤 병사도 임금을 지불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을 주시기 전까지는 우리가 나가거나 어떤 일을 시도하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습니다. 그가 퇴각 나팔을 불면 우리는 즉시 머물러야 합니다. [멈춤] 또한 우리는 소망을 통해 하나님의 은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묘사된 소망의 속성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망은 아무런 분별없이 자신을 속이는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주 1)

 

칼빈은 소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그것은 곧 꿈의 다른 말입니다. 우리가 소망하여 하나님의 은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꿈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꿈의 성격이 무엇인지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다리는 것은 바로 내 꿈을 버리고 하나님의 꿈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꿈이 아닙니다. 그런 준비가 된 상태여야 비로소 성령도 받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한편 바렛(Barrett)은 그의 ICC 주석에서 말하기를 여기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그다음 5절에 있는 성령 세례이고 이 약속의 실현은 행 2:4에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세례 요한과 주님의 말씀을 통해 미리 말해 준 것들입니다. 다만 부활 후에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잊어버렸기에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주 2)

브루스(F. F. Bruce)는 이 부분은 요엘서 2:28-32의 예언의 성취로도 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령의 세례와 현상은 몇몇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회적 현상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임에 참여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성령을 받아 방언을 하며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주 3)

 

이상의 논의를 통해 사도행전 1:4에 약속하시고 2:4에서 성취된 성령 세례는 오직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용도로만 사용됨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 전파 이외의 목적으로 성령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은 영속적으로 성도와 함께 거하며 돕기도 하지만 복음 전파를 위하여 때로는 방언과 신유, 그리고 예언 등의 은사를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이것만을 꿈꾸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전에 미얀마의 소수 부족민으로 영어 교사였던 분이 복음을 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후 한국으로 신학을 공부하러 오셨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과 함께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설교를 통역하던 중 그 마을에 복음이 처음 전파되던 때에 경험했던 일화를 통역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분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누가가 사도행전에 기록한 모든 것들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 마을에 복음이 처음 들어오던 당시 병이 낫는 일은 흔한 일이었고, 죽은 자가 다시 일어나는 일도 직접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의심 없이 그대로 믿는다고 합니다. 비록 지금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믿지 못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 우리가 사는 한국과 세계의 상황은 변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고 성령이 역사하는 일은 지금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변하는 것은 우리의 연약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약해질 때 우리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그리고 성령의 은사를 부어주시기를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이 시대와 상황에 꼭 맞는 새로운 하나님의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실 것입니다.

 

 

 

 

---------

(1) Therefore, as warlike discipline requireth this, that no man wage unless he be commanded by the captain, so it is not lawful for us either to go out, or to attempt any thing, until the Lord give the watchword; and so soon as he bloweth the retreat, we must stay, [halt.] Moreover, we are taught that we are made partakers of the gifts of God through hope. But we must mark the nature of hope as it is described in this place. For that is not hope which every man feigneth to himself unadvisedly, but that which is grounded on the promise of God.

 

Calvin, J. (1998). Calvin's Commentaries: Acts (electronic ed.). Logos Library System; Calvin's Commentaries (사도행전 1:4). Albany, OR: Ages Software.

 

(2) The promise of the Father is the gift of the Holy Spirit; ἐπαγγελία is used in the sense of the thing promised; cf. Lk. 24:49; Acts 2:33 and perhaps 2:39. The promise referred to may be that quoted from Joel in 2:17–21; more probably the promise of the Father is that which the Father had spoken through Jesus. John the Baptist had hinted at the coming of the Holy Spirit (still a matter of promise) and Jesus made the promise explicit in the present context. For the fulfilment of the promise see 2:4 and the note.

 

Barrett, C. K. (2004).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acts of the Apostles.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73). Edinburgh: T&T Clark.

 

(3) Being filled with the Spirit was an experience to be repeated on several occasions (cf. 4:8, 31), but the baptism in the Spirit which the believing community now experienced was an event which took place once for all.

 

BRUCE, F. F. (1988), The Book of the ACTS Revised Edition,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51), Eerdm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