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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5분 말씀

마 15:1-20 장로들의 전통과 갱신

by 구봉환 2025. 4. 27.

 

이 그림은 마태복음 15장 1-20절을 배경으로, 예수님께서 유대 장로들의 손 씻는 전통에 대해 자비로운 표정으로 가르치시는 모습을 담고 있다. 고전 르네상스 화풍으로 표현된 이 장면은, 외적인 규례보다 마음의 깨끗함을 중요시하신 예수님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해준다.

     - chatGPT  그림

 

 


한 사람의 현재를 보면 과거를 알 수 있고 이 둘의 내용에서 미래를 유추할 수 있다. 이는 사람의 행동이나 성향이 관성에 이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늘 하던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또한 현재의 문제를 인식하고 향후 일어날 일들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갱신과 개혁이다. 하지만 갱신과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근본을 되새기는 일이다. 그래서 진정한 갱신과 개혁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즉 그 본래 참뜻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본문 1절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나오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 개역개정
     Τότε προσέρχονται τῷ Ἰησοῦ ἀπὸ Ἱεροσολύμων Φαρισαῖοι καὶ γραμματεῖς λέγοντες·
       - The Lexham Greek-English Interlinear New Testament (Bellingham, WA, 2008), 마 15:1.
 
 본문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나와 질문하는 부분을 마태는 현재형으로 말한다. 이 현재의 모습에서 그들의 과거를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미래의 모습도 읽을 수 있다. 그들이 장로들의 유전에 집착하는 모습은 관성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 갱신은 커녕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새로운 규칙을 추가한다. 도무지 갱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개혁도 없다.  (주1)

갱신과 개혁은 현재에 안주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변화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눅 11:37 이하에서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바리새인의 식사 초대에서 그들의 손 씻는 겉치레를 지적하신다. 그러면서 바리새인이 사용하는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한데 그들의 마음 속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오늘의 본문 마 15:11 에서도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면서 사람의 속 마음, 즉 의도를 강조하신다. 따라서 겉 모양과 형식만 바꾸는 것이 갱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속 마음을 바꾸는 것은 무엇인가? 변화나 변경은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개선과 개악은 방향성에 초점을 맞춘 변경의 두 단어이다. 우리의 갱신과 개혁의 지향점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본문을 통해 시사점을 얻기 위해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집착했던 장로들의 전통의 성격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범했다고 하는 "장로들의 전통"은 구전 율법(oral law)을 말한다.  손 씻기의 근본 취지는 '위생'인데 이것이 나중에는 하나의 '의식' 또는 '의례'가 되었다. (주2)  

 

이에 대한 주님의 대답에서는 '전통'과 '하나님의 계명' 또는 '하나님의 말씀' 이 대비되면서 '근본 취지'를 강조하신다. 더 나아가 마 15:19-20에서는 "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고 하시면서 몸의 위생에만 집착한 나머지 영적 위생은 간과한 점도 지적하신다. 따라서 그들이 갱신과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근본 취지, 즉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외형적 변화 뿐 아니라 내적 변화도 가능함을 주님은 시사한다. 진정한 갱신과 개혁의 방향성은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 또는 '하나님의 말씀' 이다.

 

 결국 진정한 갱신과 개혁은 외형의 수정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나는 본질적 변화이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유전을 비판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보다 인간의 전통을 우선시하며 본질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John Calvin)의 사상과도 연결된다. 칼빈은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는 정신 아래, 신앙과 실천 모두가 본질을 향해 지속적으로 갱신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참된 갱신은 과거를 단순히 부정하거나 현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의 뜻을 회복하고 그 뜻에 따라 현재를 새롭게 함으로써, 미래를 바르게 준비하는 일이다. (주3)

(요약)

속 사람의 변화를 강조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한 전통의 수정이나 외형의 정비를 넘어 마음의 본질적 갱신을 요구하신다. 참된 갱신은 잊혀진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본래의 뜻, 하나님의 뜻을 다시 붙들고, 그 뜻을 가리는 인간적 형식과 관습을 내려놓는 것이다. 손의 깨끗함이 아니라 마음의 깨끗함을 요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마 15:11)는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 삶의 방향성과 중심은 겉이 아니라 속, 외형이 아니라 본질이어야 한다.

 "갱신은 본질로의 귀환이다. 잊힌 근본을 다시 붙드는 것이 참된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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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서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의 두 동사는 προσέρχονται 와 λέγοντες 로 둘 다 시제가 현재이다.  προσέρχονται 는 직설법 현재 중간태 또는 수동태이고  λέγοντες 는 능동태 현재분사이다. 이 구절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행동은 단순히 물리적인 접근을 넘어, 그들의 의도와 목적을 포함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경향을 암시할 수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판하거나 질문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나아갔을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중간태가 주어의 동작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행동은 이 논쟁의 목적을 드러낸다고 보인다. 또한 수동태의 가능성에서 생각해 보면 이들을 보낸 이들이 있음도 짐작이 가능하다. 이처럼 여기에 사용된 현재 시제로 인해 우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까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이 갱신하지 않는 한 어떠할지 그 종국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이러한 헬라어 동사 현재형의 용법을 단순히 새로운 본문(pericope)의 시작을 독자에게 알리는 신호(signal)일 뿐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용된 현재형을 '역사적 현재(Historical Present)'라고 하며, 마 15:1이 Τότε 로 시작하여 현재형 προσέρχονται 과 같이 사용되어 새로운 등장인물,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본문에 참여하는 것을 나타내는 역사적 현재의 한 용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견해를 반영하여 라틴어 벌게이트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Douay-Rheims Bible 은 대문자로 표시가 나도록 THEN came to him from Jerusalem scribes and Pharisees, saying: 라고 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Steven E. Runge, Discourse Grammar of the Greek New Testament: A Practical Introduction for Teaching and Exegesis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0), 125–145 을 참고하라.

 


2) 

Craig Blomberg, Matthew, vol. 22,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2), 237.

Their question refers specifically to the oral laws (“the tradition of the elders,”—i.e., of their forefathers) which had been developed to help explain and apply the Scriptures. The handwashing was more ceremonial than hygienic, though obviously both elements were involved.


 

3)
"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 —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이 문구는 직접적으로 요한 칼빈이 사용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의 신학과 개혁 정신을 후대 개혁자들과 신학자들이 요약하여 만든 문장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전반에 걸쳐, 인간의 본성은 부패했기 때문에 교회와 신자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독교 강요』 제1권 제6-7장에서 성경의 권위와 그것으로의 회복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이러한 사상은 후에 네덜란드 개혁교회(Dutch Reformed Church) 및 17세기 후반 이후 신학자들에 의해 "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되었다.
오늘날 이 문장은, 신앙 공동체와 개인이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고 말씀에 비추어 새로워져야 한다는 원칙을 상징한다.
(참고: Barth, Karl. The Church and the Churches; McKee, Elsie Anne. John Calvin on the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