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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요한계시록과 교회 갱신
어거스틴과 티코니우스는 종말의 시간을 계산하는 시도에 대해 논쟁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요한계시록 해석은 10세기의 기독교계 전반에 걸쳐 휩쓴 일련의 위기감에 기여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은 만약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사탄이 결박되었고 천년 왕국이 시작된 것이라면 사탄은 서기 1000년에 풀려날 예정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기독교의 성직자들과 군주들이 행한 탐욕과 비도덕적인 행위를 인식하게 되면 될수록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도래했다는 생각을 강화했다. 사람들은 마지막의 정확한 날짜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일부는 “빛의 자녀들이 곡의 악마의 군대와의 전투에 가담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이들은 이것이 신년 전날 한밤중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숭배자들의 무리가 이 사건을 보러 예루살렘으로 향했고 다른 이들은 그들의 소유를 팔고 로마로 가서 베와 재로 옷 입고 “우주의 황혼(마지막 밤)”을 기다렸다.8 그 순간은 지나갔고 종말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 세대 기독교인들은 요한계시록을 다른 식으로 이해해야 했다.
새로운 접근법이 신비주의 수도원 지도자인 피오레의 요아킴에 (1202년 사망) 의해 발전되었는데 그는 역사 안의 의미 있는 패턴을 찾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는 구약과 신약의 박해들 중에서 요한계시록의 환상들과 서로 연관될 수 있는 일련의 것들을 구분했다. 예를 들면 그는 “여섯째 인”의 고난들을 (계 6:12-17) 유딧서와 에스더서에서 말하는 박해와 동일시하였는데 이 박해들은 이스라엘의 역사 후반에 일어났다; 그는 또 “여섯째 인”을 십자군의 주요 무슬림 상대였던 살라딘과 연결했다. 이러한 반복의 아이디어를 유지한 채 그는 살라딘이 요한계시록의 다른 환상들에 의해서도 표방되는 것을 허용했다. 9 요아킴은 마지막 시대는 영적인 것으로서 하나님의 급작스런 침입(도래)에 의해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부터 만들어져 발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과정의 (해석) 목표는 교회의 정화였다. 요아킴은 당시 성직자와 승려들의 영적, 도덕적 수준을 비난하면서 정화는 고통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떠오르는 태양의 천사처럼 새로운 교황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는 (새로운 교황) "기독교 종교를 갱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완전한 자유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10
교회사의 의미와 개혁에 대한 강조는 계속해서 요한계시록의 후속 해석 속에 나타났다. 요아킴 자신은 교황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특히 급진적인 프란체스코 수도회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짐승이 교황이며 짐승을 타고 있는 할롯이 (음녀, harlot, NASB) 교황의 로마라고 주장했다. 편리하게도 교황 베네딕트 XI세의 이름의 그리스어 철자의 숫자 값은 더했을 때 짐승의 수 666이 되었다(계 13:18).11 짐승을 교황과 연결하는 것은 곧 흔한 일이 되었다.
8See Richard Endoes, A.D. 1000: Living on the Brink of Apocalypse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8) 1-9; quotations from p. 2.
9See Joachim’s Apocalyptic Spirituality (New York: Paulist Press, 1979) 136.
10Quoted in E. Randolph Daniel, “Joachim of Fiore: Patterns of History in the Apocalypse,” in The Apocalypse in the Middle Ages, 85.
11The values of the Greek letters for Benediktos are b = 2, e = 5, n = 50, e = 5, d= 4, i = 10, k = 20, t = 300, o = 70, s = 200.
또 다른 발전은 당시의 주요 성경 해석가인 리라의 니콜라스(1340년 사망)가 반복 이론을 버리고 요한계시록의 이미지가 1세기 이후 교회의 순차적 역사를 제시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짐승과 하롯을 교황의 로마와 동일시하기를 거부했고, 요한계시록 17-20장의 사건이 미래에 (일어나기 위해 여전히) 남아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루터는 이 두 접근법의 후계자였다. 그는 처음에 요한계시록을 무시했지만, 나중에 긴 "성 요한의 계시록에 대한 서문"을 썼는데 이 서문은 (계시록의) 환상들을 교회의 과거의 충돌과 연관 지었으며, 리라가 했던 것처럼, 짐승과 음녀를 교황의 로마와 명백하게 동일시했다.
그러나 이 서문은 어느 정도 해석자의 동시대의 사건들을 요한계시록 안으로 집어넣어 읽으려는 또 하나의 시도였다.
하지만 선정주의적인 20세기의 읽기와는 달리 루터는 요한계시록의 많은 등장인물들을 그의 동시대보다는 과거의 사람들과 동일시했다. 요한계시록의 환상들을 교회의 역사를 검토하는 데 사용함으로써 루터는 리라처럼 성경을 교회 자신이 마주한 거울로 기능하게 허용했다. 교회의 과거는 현재를 조망하게 한다. 루터는 다음과 같은 아이러니에 주목했다. “우리가 분명하게 보는 것은 극심하게 공격하던 것이 기독교가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여겨지는 우리 시대 이전부터 있어 왔다는 것이다. 이를 비교해 보면 우리 시대는 참으로 황금기이다.” 12
그러나 루터의 가장 두드러진 공헌은 교회사적인 해석이 아니라 요한계시록을 경고와 약속의 언어를 통해 읽은 것에 있다. 그의 서문의 결론은 종종 도외시되는데 그곳에서 루터는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거대하고 위험한 그리고 여러 번의 공격들이 기독교에 닥칠 것”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이 강력하고 강압적인 세력들이 기독교와 대항하여 싸울 것이며, 외적으로는 잘 구분되지 않으며 매우 많은 환난과 이단과 다른 오류들로(틀린 사상, 거짓 가르침들) 은폐할 것이므로, 보통의(타고 난) 이성으로는 기독교를 분별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교회를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만한다. 그리고 신앙은 성경의 약속들에 의해서 유지된다.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우리는 “무력이나 거짓이나 지혜나 거룩함이나 환난이나 고통 그 어느 것도 기독교를 억압하지 못할 것이며 기독교는 마침내 승리하고 정복할 것임을 확신하며 거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격이든 분파든 이단이든 거짓 가르침이든 있게 내버려 둡시다 … 복음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순전하게 남아있고 우리가 그 말씀을 사랑하고 가슴에 품기만 한다면, 비록 상황이 최악이라 하더라도 그리스도계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임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13
12“Preface to the Revelation of St. John [II],” LW 35:410.
13Ibid., 409-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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