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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 마 22:1-14; 계 19:8

구봉환 2022. 4. 5. 17:53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 마 22:1-14; 계 19:8


 
우리가 사순절 기간에 마태복음 21-23장의 내용을 주로 묵상하는 것은 여기에는 벳바게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하신 사건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주간의 첫 며칠 동안 있었던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훈택, HOW 주석 34, 마태복음) 예수님은 이때 주로 성전에서 활동하셨으며 무리, 유대 지도자들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셨다. 24장 이후에는 한 주간의 후반기에 제자들과만 함께 계셨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21~23장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을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공개 사역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제자들도 함께 있었다. 따라서 사순절 기간에는 마 21-23의 내용을, 그리고 고난주간에는 마 24 이후의 내용을 묵상하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된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그 목적이 마 22:1-14에 비유로 기록된 하나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손님(성도)들에 관한 내용이 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있어 누가 구원을 받고 누가 심판을 받을 것인지에 관한 내용이다. 이것을 본문의 혼인 잔치 비유에 등장하는 말로 설명한다면 14절에 있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는 말로 요약된다. 특히 12-13절에 나오는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참가한 사람이 쫓겨나는 것은 심판을 가리킴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 비유의 내용에 따라 나눈다면 혼인잔치와 관련하여 사람들은 모두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청함을 받았으나 거절한 사람이고, 둘째는 청함을 받고 응했으나 예복 없이 잔치에 참가한 사람이며, 셋째는 청함을 받은 후 예복을 입고 잔치에 참여한 사람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사람들만 구원을 받고 나머지는 심판을 받는다.
 
예복에 관하여 다양한 해석을 내릴 수 있으나 프란스의 설명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이해가 빠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복’은 특별한 형태의 옷이 아니라 특별한 날에 입는 깨끗한(가급적 흰) 옷을 말한다. 따라서 더러운 옷을 입고 오는 것은 주인에 대한 모욕이다. 모든 손님은 자신의 옷을 입을 책임이 있다. (주 [1])
 
하지만 이런 설명은 그 앞의 9-10절에서의 내용과 상충한다. 거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고 하셨고 이 명령에 따라 종들은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이 가득했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설명이 암시하는 것은 이 손님들은 급히 청함을 받았기에 옷을 갈아입을 겨를 없이 네거리로 나올 때 입고 있던 외출복 그대로 잔치에 갔을 것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주 [2])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심판하신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한 프란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말하는 교훈의 내용이란 하나님의 구원에 들어가는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기준이 없거나 가볍게 다룰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새로운 농부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경고(21:41, 43)는 여기서도 강조된다. 합당한 삶의 변화 없이 백성이 되겠다는 것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주장이며 결국 거부당하고 말았다.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은 그와 동일한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예복은 이러한 의미를 넘어 구체적인 회개나 칭의 또는 특정 ‘행위’와 연계될 필요는 없다.” (주[3])
 
많은 시사점이 있겠으나 여기서는 한 가지만 확인하자. 우리는 매주 예배를 통해 마지막 날 있을 어린 양의 혼인 잔치(계 19:8)에 참여하는 연습을 한다. 어린 양의 신부인 성도들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주 [4])
 
 한 주간을 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주일에 교회의 예배에 참석한다. 그 예배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예복을 입고 있음을 보여야 한다. 성도에게 요구되는 합당한 삶의 변화, 그리고 이 변화는 항상 아무 때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마치 네거리에서 무작위로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 그대로 잔치에 간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일상 외출복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이어야 한다.

https://youtu.be/PToYd3GjmiE?si=H5Ht5rOoSXLajN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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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 T. 프란스, 마태복음, eds. 박상민 and 진규선,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초판.,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1:499.
 
[2] The imagery clashes with that in vv. 9–10 (these guests have been ‘scooped up’ and will have come as they were—their dress was fit to be out and about in, but nothing more), but is intelligible on its own terms.
John Nolland, The Gospel of Matthew: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2005), 890.
 
[3] R. T. 프란스, 위의 책, 1:499–500.
 
[4] The king observes at the messianic banquet someone (note Sim’s conclusion [HeyJ 31 (1990) 165–78] that the man could also represent the Jewish leadership who decline the invitation in the first section of the pericope [vv 3–6]) who is not properly clothed, i.e., does not have an ἔνδυμα γάμου, “wedding garment.” For such a garment as a metaphor for righteousness, cf. Rev 19:8, where at the marriage of the Lamb the Bride is granted to wear “fine linen, bright and pure,” whereupon follows the statement: “for the fine linen is the righteous deeds [τὰ δικαιώματα] of the saints.
Hagner, D. A. (2002). Vol. 33B: Word Biblical Commentary: Matthew 14-28. Word Biblical Commentary (631). Dallas: Word, Incorpo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