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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연구/요한복음

요한복음 4:25-26 분석

by 구봉환 2026. 2. 21.

요한복음 4장 25절에서 가나안 여인의 고백과 이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그 신학적 함의와 오늘날의 신앙적 시사점을 도출하는 것은 성경 본문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주어진 자료를 바탕으로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제시합니다.


1. 여러 학자 견해의 공통점과 신학적 함의

주어진 자료에서 여러 학자들은 가나안 여인의 메시야에 대한 언급에서 몇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가. 공통점 도출

  1. 사마리아인의 메시아 대망 사실: 거의 모든 학자들(JFB, CamGr, CBSC, Ellicott, ExpGrNT, Pett, RWP, Gill, Benson, Coke 등)은 사마리아인들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메시아(그들의 용어로는 '타헤브')의 도래를 기대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여인의 고백 "메시야가 오실 줄을 압니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당시 사마리아 공동체 전반에 퍼져 있던 신앙적 소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Clarke, Gill 등은 본문의 '나는 안다'(οἶδα)를 '우리는 안다'(οἴδαμεν)로 읽는 사본을 언급하며 이를 뒷받침합니다.)
  2. 대망의 신학적 근거: 학자들은 사마리아인의 메시아 대망이 오경, 특히 신명기 18장 15절('나와 같은 선지자 한 사람을 너희 형제 중에서 일으키리라')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지적합니다(JFB, Ellicott, ExpGrNT, RWP, Hengs, Gill, Coke, Pool). 또한 창세기 49장 10절의 '실로'에 대한 예언도 근거로 언급됩니다. 이는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의 예언서들은 받지 않았지만, 모세오경 안에 내포된 메시아적 약속을 통해 구원자의 오심을 고대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 메시아의 역할에 대한 이해 - '진리의 계시자': 여인이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리라"고 말한 것에 대해, 학자들은 메시아를 주로 '모든 것을 가르쳐줄 위대한 선지자이나 교사'로 이해했다고 해석합니다(JFB, Ellicott, ExpGrNT, RWP). 이는 유대인의 정치적, 군사적 구원자 상과는 구분되는, 사마리아인 특유의 강조점입니다.
  4. '그리스도라 불리는'에 대한 해석: 많은 학자들(CamGr, CBSC, Gill, Benson, Coke, Clarke)은 "그리스도라 하는"(ὁ λεγόμενος Χριστός)이라는 구절이 여인의 말이 아니라 **복음서 저자 요한이 자신의 그리스도 독자들을 위해 덧붙인 각주(註)라고 설명합니다. 아람어를 사용했던 여인이 유대인에게 히브리어 단어인 '메시아'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 신학적 함의

이러한 공통점들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신학적 함의를 지닙니다.

  • 구원 계획의 보편성: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유대 민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마리아인과 같이 유대인에게 이방인이요 이단 취급을 받던 공동체에게도 하나님은 메시아에 대한 소망의 씨앗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구원이 '유대로부터 나지만'(요 4:22) 그 대상은 온 세상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만든 종교적,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습니다.
  • 인간의 본질적 갈망 - 진리에 대한 굶주림: 사마리아인들이 메시아를 '모든 것을 알려줄 계시자'로 기대했다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단순히 정치적 압제나 경제적 궁핍이 아니라,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는 '진리의 결핍'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예배의 장소(그리심 산 vs 예루살렘)에 대한 논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오실 메시아가 모든 것을 알려주리라"고 말한 여인의 태도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것은 참된 신지식(神知識)임을 드러냅니다.

2. 학자들 견해의 차이점과 그 근거

학자들 간에는 몇 가지 세부적인 해석에서 차이점이 나타나며, 각 주장은 나름의 설득력 있는 근거를 가집니다.

가. 여인이 사용한 메시아 칭호에 대한 견해 차이

  1. 여인이 '메시아'라고 직접 말했다는 견해:
    • 주장: 여인이 대화 상대인 유대인 예수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구원자에 대해 말할 때, 유대인이 사용하는 공통된 칭호인 '메시아'를 의도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입니다(Ellicott, RWP).
    • 근거: 사마리아인들이 유대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고, 특히 중간기(또는 특정 시대)에 유대인 이단자들이 많이 거주했던 역사적 배경(Hengstenberg 인용)을 고려할 때, '메시아'라는 용어가 사마리아 사회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또한, 대화의 맥락상 상대방을 배려하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 이 문맥에서 언급된 **Hengstenberg(헹스텐베르그)**의 주장을 역사적으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됩니다.
      의미 분석: "사마리아 지역에 유대인 이단자들이 많이 거주했던 시기(時期/Time Period)"를 뜻합니다.
      역사적 배경: 사마리아는 본래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으나, 앗수르 침공 이후 혼혈 민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간기, Intertestamental Period, 신구약 중간 시대) 동안 유대교 내에서 갈등을 겪거나 쫓겨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로 넘어가 정착하면서 유대교의 메시아 사상이 사마리아인들에게 더 깊이 전달된 특정 시기가 있었습니다.
  2. 여인은 '타헤브'라고 말하고 요한이 '메시아'로 번역했다는 견해:
    • 주장: 여인은 사마리아인의 고유한 메시아 칭호인 '타헤브(Taheb, 회개케 하는 자, 돌아오는 자)'를 사용했고, 복음사가(福音史家) 요한이 그것을 자신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메시아'로 번역했다는 견해입니다(CamGr, CBSC, Pett, Hengs).
    • 근거: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과 구별되는 자신들의 신학과 전통을 가졌으며, 그에 따라 메시아 칭호도 달랐을 것이라는 문화적, 신학적 구별성이 가장 큰 근거입니다. 또한, 본문 전반에서 요한이 대화의 정확한 기록보다 그 핵심 내용을 전달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는 점(CamGr, CBSC)은 이러한 ' 역자적(譯者的) 역할'의 개연성을 높여줍니다.

나. '타헤브'의 의미에 대한 견해 차이

'타헤브'의 의미에 대해서도 학자들 간에 의견이 엇갈립니다.

  1. '회개케 하는 자(The Converter)' 또는 '가르치는 자(The Teacher)':
    • 주장: '타헤브'를 '회개시키는 자' 또는 '가르치는 자'로 이해하는 견해입니다(CamGr, CBSC, ExpGrNT).
    • 근거: 이는 여인의 고백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리라"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설명입니다. 메시아의 핵심 역할을 계시와 교육으로 보는 것과 일치합니다.
  2. '돌아오는 자(The Returning One)':
    • 주장: '타헤브'를 '다시 오시는 분', 특히 '모세의 재림'으로 이해하는 견해입니다(Ellicott, Hengs).
    • 근거: Hengstenberg는 신명기 18장 15절의 '나와 같은 선지자'를 근거로 들어, 사마리아인들이 메시아를 돌아올 모세로 기대했다고 상세하게 주장합니다. 이는 사마리아인들의 모세 중심적 신앙을 고려할 때 매우 설득력 있는 해석입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여인은 '돌아올 위대한 선지자'를 기대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응답에 대한 종합적 견해와 오늘날 성도의 신앙적 자세

 

가. 예수님의 응답 "나는 곧 그라"(Egō eimi)에 대한 종합적 이해

 

학자들은 예수님의 직접적인 자기 계시에 대해 거의 일치된 견해를 보입니다.

  • 명확하고 직접적인 자기 계시: 예수님은 은유나 우회가 아닌, "내가 곧 메시아다"라고 명백하게 선언하십니다(JFB, CamGr, CBSC, Ellicott, ExpGrNT 등). 이는 복음서에서 매우 이례적인 직접적인 고백입니다.

  • 왜 사마리아 여인에게만?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아 신분을 숨기셨던 이유와 반대로, 여인에게는 드러내셨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1. 다른 메시아상: 유대인들은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를 기대하여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기에(요 6:15), 예수님은 그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신중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은 메시아를 '진리를 계시하는 선지자'로 기대했으므로, 정치적 오해의 위험이 없었습니다(CamGr, CBSC, ExpGrNT, RWP, Benson, Coke).
    2. 여인의 영적 준비: 예수님은 여인의 마음이 이미 준비되었음을 보셨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적 권위를 의심하고(선지자로 여김), 더 나아가 메시아의 오심을 갈망하며 진리에 대한 열린 마음을 보였습니다(JFB, ExpGrNT, Wesley). 예수님은 이런 영적 갈망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십니다.
    3. 은혜의 임재: 이는 예수님의 긍휼과 은혜를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입니다. 죄지은 사마리아 여인,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여인에게 유대 지도자들이나 제자들에게보다 더 명확하게 자신을 드러내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조건이나 배경을 초월한 은총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Hengs, Gill).

 

나. 오늘날 성도가 가져야 할 신앙적 자세에 대한 시사점

 

이 모든 분석은 오늘날 우리가 어떤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줍니다.

  1. 편견을 넘어선 복음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자세:
    예수님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갈등을 뛰어넘어 한 영혼을 만나셨습니다. 우리 또한 교파, 인종, 사회적 신분, 신앙 수준 등 어떠한 편견도 가지지 말고 복음이 필요한 모든 영혼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은 유대로부터 난다'는 말은 복음의 근원을 밝히는 것이지, 그 사역의 대상을 제한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며, 메시아를 갈망하는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2. 겸손하게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갈망하는 자세:
    여인은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려주리라"고 말하며 자신의 부족함과 무지를 인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만날 수 있는 자세입니다. 우리는 내가 모든 것을 안다는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히 우리의 생각과 삶을 비추고, '주께서 나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시길' 간절히 구하는 영적 가난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3. 개인적이고 현존하는 그리스도와의 만남:
    예수님은 "내가 너에게 말하는 이가 그라"라고 하시며,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여인과 대화하고 계시는 '현재의 그리스도'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나 미래의 소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의 자리에서 나와 말씀하시는 예수님과의 살아있는 개인적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성경 읽기, 삶의 모든 순간이 나를 향한 "내가 곧 그라"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4. 상황에 맞는 지혜로운 복음 증언:
    예수님은 유대인에게는 '인자'라는 칭호를,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메시아'라는 칭호를 사용하시며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가가셨습니다. 이는 복음을 전할 때, 상대방의 문화적 배경과 신앙 수준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맞는 언어와 방법으로 진리를 설명해야 한다는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정답만 강요하기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소통하며 그들의 영적 갈증을 살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