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저녁 설교원고] 요 6:26, 믿음의 축복과 물질의 풍요
[서론: 한 주의 절반, 우리 마음의 현주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의 절반을 성실히 살아내고 이 저녁 주님 앞으로 모인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수요일 저녁은 우리가 잠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마음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주님 앞에서 점검하는 참 귀한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6장 26절은 우리 인생의 목적지를 재점검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간절히 찾아온(제테오, G2212) 무리들을 향해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여기서 '배부르다'는 표현은 짐승이 여물을 먹고 포만감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는 지금 내 얼굴을 구하는 '믿음의 축복'을 원하는 것이냐, 아니면 그저 네 배를 채워줄 '물질의 풍요'만을 구하는 것이냐?"
[본론 1: 만나 속에 담긴 하늘의 비밀]
우리는 광야의 양식인 만나(H4478, 만)를 기억합니다. 그 이름의 뜻은 "이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만나를 먹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아침 깨달아야 했습니다. '아, 이 떡은 내 노력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신비구나. 나는 떡이 아니라 이 떡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사는구나.'
이것이 바로 믿음의 축복입니다. 떡이 없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떡이 있어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 그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자는 세상의 결핍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기에, 물질이 조금 부족해도 당당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 개혁주의 신앙의 자존심입니다.
[본론 2: 대조의 예화 - '금잔'과 '나무 잔']
여기, 물질의 풍요와 믿음의 축복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경건한 선진이 박해를 피해 동굴에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거친 보리떡 한 조각과 물 한 잔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나가던 이가 물었습니다. "그 초라한 음식 앞에 무엇이 그리 감사합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지금 왕의 금잔에 담긴 술보다, 주님이 친히 깎아주신 이 나무 잔에 담긴 생명수가 더 달콤합니다. 금잔은 육신의 배를 불리지만, 주님의 잔은 내 영혼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풍요는 '금잔'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축복은 '나무 잔'을 들고 있더라도 그 안에 주님의 임재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본론 3: 임실 장로님의 기도, 우리가 전수할 유산]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물질의 풍요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선진들(Presbyterio)은 물질의 풍요보다 믿음의 정절을 먼저 구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전북 임실의 한 작은 교회 장로님의 이야기는 지금도 제 가슴을 때립니다.
공산군이 들이닥쳐 교회에 불을 지르고 성도들을 위협할 때, 장로님은 피난을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강단 아래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총구 앞에서도 장로님은 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주님, 이 종의 목숨은 주님의 것이니 거두어 가셔도 좋습니다. 다만 이 땅에 이 복음의 씨앗만은 타 죽지 않게 하시고, 우리 후손들이 마음껏 주님을 찬송하는 나라가 되게 하소서."
장로님은 그날 '목숨'이라는 땅의 떡을 포기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에게는 주님 자체가 '생명의 떡'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눈물의 기도가 오늘 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토양이 되었습니다.
[결론: 주님의 얼굴로 충분한 삶]
말씀을 맺습니다. 수요 저녁은 한 주의 절반을 지낸 지점입니다. 지난 3일 동안 혹시 물질의 풍요를 쫓느라 믿음의 축복을 놓치지는 않으셨습니까? 세상의 떡으로 배부르려다가(에코르타스테테), 정작 영혼은 굶주려 있지는 않습니까?
남은 3일은 다르게 살아봅시다. 우리에게 이 귀한 믿음을 물려준 선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봅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은 통장의 잔고가 넘칠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얼굴을 마주할 때 터져 나오는 고백입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16:11의 말씀을 가슴에 새깁시다. "당신의 얼굴 앞에는 기쁨의 포만감이 있습니다." 세상의 떡이 채워주지 못하는 그 완전한 포만감이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이 뜨거운 믿음의 축복을 고스란히 전수하는 참된 전도자가 됩시다. 주님의 영광이 여러분의 남은 일주일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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