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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뱃속에 들어가기 (요나 1:1-16)

구봉환 2021. 4. 4. 03:07

 

사역자에게 발생하는 단순하고 명백한 일 (요나 1:1-3)

 

요나서는 미완료 동사(וַֽיְהִי֙ - 봐예히)로 시작한다. 이는 문자적으로 "그리고 발생했다 -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했다"라는 의미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요나의 내러티브에서 그 서론을 간략하고 단순하게 설명하려고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한다. 이는 요나가 처한 상황 이해에 본질적인 사실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주 1)

이런 사실을 반영하듯 요나서 1:1-3의 구조 역시 간단명료하다. 1, 2절의 하나님의 명령과 3절의 이에 대한 요나의 반응, 즉 도망이다.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창세기 12:1에 나온다. 그곳 역시 동사(וַיֹּ֤אמֶר - 봐요메르)로 시작한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의 의미이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위의 도식에서 비교되듯이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고 도망갔다. 아브람은 말씀대로 따라 순종했다. 이처럼 구약 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사역자들에게도 발생하는 가장 단순하고 명백한 일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 이 두 가지이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 받은 사역자가 자신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그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오직 두 가지 뿐이다. 순종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가든지, 그는 선택해야 한다. 중간은 없다. 이 말의 의미는 순종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이유나 핑계에도 불구하고 모두 불순종이라는 것이다. 요나의 이야기대로 말한다면 '니느웨로 가든지 아니면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든지'이다.

 

열왕기하 14:5의 요나에 대한 언급을 참고한다면 요나는 여로보암 2세의 영토 확장 전쟁의 승리를 예언했다. 그리고 예언은 적중했다. 그런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는 것은 그의 성공적이고 화려하며 편안한 사역지를 떠나 적국 앗수르의 수도로 가라는 것이다. 그것도 몰래 잠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말을 전하라는 것이다. 2절의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는 번역은(개역개정) 개역에서는 '그것을 쳐서, 대항하여 외치라'이다. 이는 요나가 왜 도망하려 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익숙한 본토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이 명령 역시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순종했다. 그리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요나서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역자의 입장에서는 순종과 불순종의 문제로 떠오른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 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위해 복음을 버리고 도망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로 다가온다. 비록 목숨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익숙하고 인정받는 안락한 환경과 맞바꾸는 불편함과 거친 환경의 선택이 된다.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는 이유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도망한 이유는 그렇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니느웨에 대한 당시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판단 때문이다. 또한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성경적이고 거룩한 명분 때문이기도 하다. (주 2)

 

이러한 이유에 대한 설명은 매우 정교하며 논리적이다. 그리고 많은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비록 요나서에 나오는 니느웨와 당시의 이스라엘, 그리고 주변국들의 정치 사회적인 정황이 있다 하더라도 요나서에서 말하는 가장 명백하고 단순한 주제는 하나님의 명령과 그에 대한 반응이다.

 

일단 하나님의 명령이 발생하면 - 말해지면, 깨달아지면, 느껴지면, 감동이 오면 등등 이를 표현하는 말은 매우 다양하다 - 그때부터는 모든 정황을 떠나 오직 순종이냐 아니면 불순종이냐의 문제만 남는다. 그리고 그 명령의 도덕성이나 타당성 등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어떠한 이유나 명분도 거론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보다 하나님의 명령이 더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가리켜  '저 큰 성읍'이라고 하셨을 때 저 큰 이라고 하는 단어(הַגְּדוֹלָ֖ה - 하가도르)는 중요하다는 의미도 지닌다. 결국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의 대립인 셈이다. 그러므로 사역자가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내 기준과 판단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불순종이다.

 

 

고래 뱃속은 배가 거의 다 깨진 후에 들어간다 (요나 1:4-16)

 

요나가 욥바로 내려가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 배삯을 지불하고 배에 오른다. 그러나 그 배는 요나가 탔으므로 하나님의 주목을 받는다. 그 배와 거기에 승선한 요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요나가 문제이다. 요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난 사람들은 그 이유도 모른 채 아우성을 친다. 그러나 요나는 배의 가장 바닥 층에 내려가 깊은 잠을 잔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과 너무도 내조적이다. 오죽하면 선장이 그를 깨워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했겠는가? 

 

불순종한 사역자가 해야 할 일을 세상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요나는 잠만 잔다. 막대한 재산 상의 손실을 초래하고 엄청난 혼란과 난리 속에서 이제 제비 뽑기가 시행된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사역자에게 세상은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사건을 제공한다. 제비뽑기로 바다에 던져질 사람을 결정한다. 이 일이 가리키는 바는 분명하다. 세상이 대신 나서서 요나를 징벌한다. 그리고 고래 뱃속으로 요나는 들어간다. 

 

이 제비 뽑기에 대하여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사람들의 이 방법이 그릇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사실을 가리켜 칼빈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타언에게 전가시키려고 하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의롭다고 하려는 행위야말로 오늘날 우리 세대에 만연한 죄악이다"라고 한다. (주 3)  로마의 대화재 후에 네로가 그 원인을 그리스도인에게 돌린 것처럼 이런 일은 세상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의 충돌에서 흔히 발생한다. 하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요나 자신이었다. 물론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아니었지만... 

 

오늘의 우리에게 이와 같은 제비 뽑기가 발생한다면 그 원인은 누구 탓인가? 요나의 모델인가, 아니면 네로 시대의 로마의 그리스도인의 모델인가? 최소한 요나의 모델은 되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고래 뱃속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제 요나는 고래 뱃속에 안착한다. 안착이라는 말은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곳은 요나가 기도할 장소이다. 그곳은 요나가 거듭날 장소이다. 그곳은 요나가 사명을 되새기는 장소이다. 그곳은 요나가 회개하고 자복할 장소이다. 그리고 마침내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재차 준비하는 장소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처음 받았을 때 순종하지 않고 도망한 요나가 들어갈 은혜의 장소이다.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많은 사역자들에게 요나는 말한다.

 

어저께나 오늘이나 (찬135) Yesterday, Today, Forever - 로마연합교회 - YouTube

그래도 고래 뱃속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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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글라스 스튜어트, WBC. 

 The book of Jonah begins with a converted apocopated imperfect verb (ויהי) usually thought to indicate the continuation of a narrative, [1]

 In keeping with the overall form of the book as didactic historical narrative, the introduction strives to be brief and simple. It presents the facts essential to a comprehension of the situation of Jonah with an absolute minimum of detail.[2]

 

[1]Stuart, D. (2002). Vol. 31: Word Biblical Commentary : Hosea-Jonah. Word Biblical Commentary (444). Dallas: Word, Incorporated.

[2]Stuart, D. (2002). Vol. 31: Word Biblical Commentary : Hosea-Jonah. Word Biblical Commentary (445). Dallas: Word, Incorporated.

 

 

 

2) The Bible frames Nineveh as a thoroughly evil city and an enemy of Israel. The book of Jonah  describes Nineveh, its inhabitants, and its king as so evil that Yahweh threatens to completely destroy them if they do not repent. The Israelite prophet, Jonah, despises Nineveh and is disappointed when the people repent and Yahweh spares them. The book of Nahum describes Nineveh’s destruction at the hands of the Babylonians in graphic detail. It also describes Nineveh as a city of bloodshed.
The biblical authors of Jonah and Nahum believed that Nineveh was evil and deserved the  punishment it finally received. This stance was a result of the historical situation of Assyrian dominance throughout Mesopotamia and Palestine. Both Israel (northern kingdom) and Judah (southern kingdom) were subject to Assyrian rule and experienced the harsh treatment with which Assyria maintained control.

Anna Sieges, The Lexham Bible Dictionary, 2016.

 

 

 

3)

And it is an evil that prevails at this day in the world, that every one is disposed to cast the blame on others, and all would have themselves to be innocent before God;[3]

 

[3]Calvin, J., & Owen, J. (2010). Commentaries on the Twelve Minor Prophets (3:45). Bellingham, WA: Logos Research Systems,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