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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예배에 대한 성경적 입장(렘7:1-11,29:4-14)

구봉환 2020. 9. 14. 03:40

대면예배에 대한 성경적 입장(렘7:1-11,29:4-14)

출처: 김광석 목사님 블로그 blog.daum.net/bible386/2525

 

성경적 신학/설교모음

2020. 9. 1.

 

코로나로 인해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가 금지가 되었습니다. 당분간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를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 기독교계 일각에서는 이것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떻게 현장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느냐 고 하면서 현장예배를 강행해야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물론 그렇게 주장하는 분들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지난주에 휴가라서 외할아버님이 개척하신 시골교회를 가보았습니다. 시골교회에서는 영상예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이번에 기독교지도자들이 문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한국교회에서 영상예배를 드릴 수 없는 개척교회나 시골교회가 70프로가 되기 때문에 현실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이유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이유가 아니라 신앙적인 이유로 예배는 반드시 예배당 건물에 와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성경적으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한 주간 동안 과연 예배당에 와서 예배하는 것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인가를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묵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하지 못하는 이때에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해야하는가를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예배당에 와서 예배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예레미야 7에 나오는 예레미야의 성전설교를 통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 코로나시대에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배하고 기도할 것인가에 대해서 29을 통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과연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진정한 예배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렘 7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7장과 함께 26장에서 모두 예레미야의 성전에 관한 설교가 있습니다.

렘26장 1을 보시면 예레미야가 성전에 관한 설교의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26: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이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여기서 보시면 예레미야에게 성전에 관한 말씀이 임한 때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유다나라가 주위에 있는 강대국들 때문에 멸망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이때는 이미 북 왕국인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이미 멸망을 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북 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도 바벨론에 의해서 침공을 받아 힘을 잃어가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신흥 강대국인 바벨론은 더 강력하게 유다나라를 위협을 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렇게 유다나라가 주위의 강대국들의 위협이 있는 가운데서 그들이 가졌던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전에 관한 신앙이었습니다. 주위에 아무리 큰 강대국들이 그들을 위협해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에서의 예배와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우리의 모든 대적들을 물리치신다는 신앙이었습니다.

 

이때 예레미야에게 성전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7장 1입니다.

 

렘7장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이 말씀은 성전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지금 예레미야는 성전의 문 앞에서 서서 여호와께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성전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위기의 때에 이 성전에서 예배하고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대적을 다 물리쳐주신다는 신앙을 가지고 예배하러 오는 유다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여기서 너희 길과 행위란 예배를 드리기 전 우리의 모든 삶과 행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기 전 너희의 모든 삶과 행위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하면 너희가 사는 이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살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이 성전이 있는 한 우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이 성전에서 예배하고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대적을 다 물리쳐 주신다는 말을 거짓말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성전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대적을 물리쳐 주신다는 신앙을 가지고 예배하러 올라가는 유다나라 사람들에게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에서는 이것은 여호와의 성전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또 당시 유다나라 사람들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렘 26에 보면 이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를 사람들이 죽이려합니다(26:10,11).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그 이유는 예레미야 시대 사람들의 삶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여기서 너희가 만일 이라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지금 유다나라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살고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면이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라고 하는 말은 진짜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겉으로가 아니라 진짜로 너희의 삶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르게 행하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배를 드리기 전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으로 바른 삶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5절에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는 삶이란 법정에서 바르게 증언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가난하다고 해서 불리하게 증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유리하게 증언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불리하게 되어도 바른 것에 대해서는 바르게 증언을 하고, 또 내 편이라고 할지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이라고 증언하는 삶입니다.

 

둘째는, 약자를 보호하는 삶입니다. 6절을 상반 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고대 근동당시에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들은 항상 가난한 자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래서 22에서 이방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않는 삶입니다. 6절 중반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여기서 무죄한 자는 당시에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참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26장에서 사람들은 성전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또 렘26장에 보면 여호야김 왕이 참 선지자인 우리야를 칼로 죽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넷째는 하나님과 함께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삶입니다. 그래서 6절 하반 절을 보면

 

 6하--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른 신은 바알 신을 말합니다이렇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른 삶을 살 때 7

 

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성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아닙니다. 성전에서의 기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아닙니다. 예배도 중요하고 성전도 중요하고 성전에서의 기도도 중요하지만, 예배를 드리기 전의 삶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르게 되어야 너희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다백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 걱정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그 이유가 8절에 있습니다.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여기서 무엇이 무익한 거짓말입니까? 아무리 죄를 지어도 무조건 성전에서 예배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바르게 살지 않아도 성전에서 무조건 열심히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재앙도 물리쳐 주시고, 경제도 회복시켜 주시고, 모든 문제도 해결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이런 거짓말을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하고 기도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전에 관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유다백성들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당시 유다백성들은 십계명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도둑질 살인 간음 거짓맹세에 관한 말씀은 십계명가운데서 인간과의 관계에서 하신 계명들입니다. 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십계명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신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삶을 살면서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도 이 성전에 들어오기만 하면 이것으로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성전에 들어온 것으로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니 우리가 그 어떤 가증한 일을 행해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구원받은 것은 결국 이 모든 가증한 악한 일을 행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이 성전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 도둑의 안식처로 보이느냐 나는 이 성전에서 도둑의 소굴을 보았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서 강도의 소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1).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코로나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 말씀을 통해서 단순히 예배가 중요하지 않다, 현장예배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예배는 목숨같이 중요합니다. 또 우리가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또 함께 모여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할 때 하늘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배도 중요하지만 예배를 드리기 전 우리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강조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따라서 우리의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는 삶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 이웃을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지금 유다백성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있지만 바알도 섬기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함께 섬기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은 구원만을 주시고 바알은 물질의 풍요를 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유다백성들은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보다 물질의 풍요가 더 큰 우상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보다 물질의 풍요를 더 우상시했기에 그들은 사람을 대할 때도 모든 것을 물질의 기준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돈이 있고 힘이 있는 부자에 대해서는 무조건 옳다고 판결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힘이 없고 돈이 없는 고아와 과부와 같은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고 압제했습니다. 또 거짓선지자들처럼 무조건 부자가 되고 잘된다고 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망한다고 했던 참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 성전에서 무조건 기도하기만 하고, 예배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대적을 다 물리쳐 주신다는 성전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이 성전에 오기만 하면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그 어떤 삶을 살아도 괜찮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무조건 성전에서 예배하기만 하고, 기도하기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믿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이 성전의 건물을 하나님처럼 신뢰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렘7 14절에 보면 

 

렘7:14중.--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신뢰하다는 말은 성전을 하나님처럼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 7장 12절과 14에 보면 내가 과거에 이스라엘의 악 때문에 실로에 있던 하나님의 성소를 망하게 하였던 것처럼 너희 예루살렘 성전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렘7 16절에

 

7: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코로나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배도 중요하고 기도도 중요하고 교회에서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예배도 중요하고 기도도 중요하고 교회에서 행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주에 어떤 목사님의 글이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제목은 코로나 감염시대가 주는 메시지입니다.

 

1.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것은 '잠잠하라'는 뜻입니다. 막말과 거짓말을 하지 말며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입니다.

2.'손을 자주 씻으라'는 것은 '마음을 깨끗이 닦으라'는 뜻입니다. 마음의 거울을 닦으면 자신이 보이고 마음의 창을 닦으면 이웃도 보일 것입니다.

3.'사람과 거리를 두라'는 것은 '자연을 가까이 하라'는 뜻입니다. 사람끼리 모여 살면서 서로 다투고 상처를 주지 말라는 말입니다. 공기와 물과 자연의 생태계를 돌보며 조화롭게 살라는 말입니다. 자연을 가까이 하면 마음이 넉넉하여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4.'대면 예배를 하지 말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위안을 얻거나 사람에게 보이려고 예배당에 가지 말고 천지에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말입니다. 어디서나 고요하게 하나님을 대면하면 그 나라와 그 뜻에 가까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5.'집합을 하지 말라'는 것은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라'는 뜻입니다. 모여서 선동하거나 힘 자랑하지 말고 사람이 그리운 이들의 벗이 되라는 말입니다. 우는 이들과 함께 울고 무거운 짐을 홀로 진 이들과 나눠진다면 세상은 사랑으로 포근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코로나시대 예배가 어떻게 되어야합니까? 코로나 시대에 기도가 어떻게 되어야합니까? 

 

이것에 대해서 예레미야 29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렘 29장 4을 보시기 바랍니다.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예레미야시대에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들 우리는 절대 바벨론에게 항복할 수 없다. 성전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우리가 2년 안에 바벨론을 이길 것이다. 비록 국민들을 바벨론과 싸우게 하여 죽게 하더라도 저 이방 바벨론과 끝까지 싸워야한다고 하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들, “우리는 바벨론을 이길 수 없다. 또 우리에게는 힘이 없다 고 하면서 전통적인 강대국인 애굽으로 도망가서 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들, “저 바벨론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성전의 기구들을 바벨론이 빼앗아 가게 하셔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1). 그래서 우리는 바벨론에 항복해야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고 하면서 바벨론에 포로로 순순히 잡혀 가는 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 합당한 자들이라고 생각십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는 첫 번째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전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우리가 저 바벨론과 대적하여 싸워야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서를 보면 이렇게 주장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보내시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또 이렇게 주장하는 자들의 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칼과 기근과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자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들이었습니까? 바벨론에 항복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순순히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입니다. 바로 렘 29 4절에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 너희는 (바벨론에서)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어떤 말씀입니까?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삶 속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것이 삶속에서 드리는 예배입니까? 바벨론에서 텃밭을 만들어 열매를 맺으라는 것은 창2장에서 에덴동산에서 땅을 경작하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거기서 땅을 경작한다는 것은 아바드라는 말로서 예배한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에서는 삶이 예배였고, 예배가 삶이었습니다. 또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시는데, 6절에서 자녀를 낳아서 번성하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에서 의식적으로만 예배를 하던 자들에게 이제 너희의 세상 속에서의 삶이 예배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의 진정한 예배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예배가 되는 삶입니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에 집 밖을 잘 나가지 못하기에 여러분 집에서 청소하는 것도 코로나 시대의 예배입니다. 왜 청소하는 것이 예배입니까? 예레미야 4 23절에 보면 유다 땅의 형편이

 

 4:23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이 없으며라고 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12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빛이 없는 상태와 같습니다.

그래서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혼돈한 가운데서 정리를 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둘째 날과 셋째 날에 혼돈한 세상을 정리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둘째 날에 땅과 하늘을 정리하셨습니다. 또 셋째 날에 땅에서도 육지와 바다를 정리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넷째날과 다섯째 날에 정리를 잘 한 뒤에 공허한 곳을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정리를 잘하고, 정리한 곳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 바로 청소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코로나 시대의 청소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7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바벨론)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시면 어디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전이 아닙니다. 바벨론에 가서 그 바벨론에서 기도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은 매일 집에서 창문을 열어두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시대의 기도는 매일 집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또 무엇을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바벨론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벨론이 평안해야 너희도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집에서 무엇을 기도해야합니까? 우리나라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가 평안해야 가정도 평안하고 교회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1-14절을 괄호 친 부분을 넣어서 풀어서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성전만 아니라 집에서)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집에서도)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성전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도) 만날 것이며 너희를 (코로나에)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코로나 시대에 일상에서의 참된 예배와 기도로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미래와 희망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