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s, Movies

쾨스터 교수의 요한계시록 해석사 (1)

by 구봉환 2020. 10. 24.

Word & World 1995년 봄호에 기고한 쾨스터 교수의 "요한계시록 해석사"이다. 몇 번에 걸쳐 번역할 예정이다.

 

 

 

밀레니엄의 길목에서:

요한계시록 해석의 역사

CRAIG R. KOESTER

Luther Seminary

St. Paul, Minnesota

 

 

 

한권의 책의 힘은 그 영향에서 알 수 있는데 그 어떤 책도 요한계시록보다 더 극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없다. 긍정적으로 요한계시록은 수많은 설교와 신학 논문, 예술 작품, 그리고 승리의 “할렐루야 합창곡”부터 “나의 행복한 집, 예루살렘” 1에 이르기까지 음악 작곡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부정적으로는 사회적 격변과 종종 그리스도의 재림 날짜를 분별하고자 하는 잘못된 시도로 설립된 교파적 종교 운동에 자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 책의 영향력을 무시하거나 간과함으로써 통제하고자 하는 시도 역시 성공적이지 못했다; 요한계시록의 비밀들은 너무 암시적이다. 수 세기에 걸쳐 이 책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끼쳤던 영향력들을 고려해 보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력의 역사를 통해 신앙적이면서 동시에 선동적인 이 책을 읽는 방법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게 하자.

 

 

 

I. 미래주의적이며 시간에 상관없는 (이상주의적인) 해석들

 

오래 전(1-2세기)의 요한계시록의 해석은 두 가지 입장으로 생겨났다. 일부는 요한계시록을 주로 미래 세계에 관한 메시지로 이해했고 반면에 다른 이들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시간과는 상관없는 메시지로 간주했다. 이 책의 미래주적의이고 시간과 상관없는 요소들의 상호작용은 현재까지도 해석자들의 주의를 끌고 있다.

요한계시록을 미래주의적으로 읽는 것은 특히 로마 제국의 서쪽에서 유행하였다. 현존하는 작품들을 로마에서 저술한 저스틴 마터(165년경 사망), 남부 프랑스 리옹의 추기경이었던 이레니우스(200년경 사망)는 성도들이 지구 상의 회복된 예루살렘에 함께 모여 거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살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계 20:4-6). 이 왕국에서 지상낙원에 대한 성경의 약속들이 실현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수명이 연장되며 사람들이 “집을 짓고 그곳에 살게 될” 때를 약속하셨다; 그들은 “포도원을 경작하고 그 열매를 먹게 될” 것이며, 손실의 걱정 없이 그들의 손으로 일한 것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날에는 “늑대와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황소처럼 짚을 먹을” (사 65:20-25) 것이다. 이와 같은 지상낙원에 대한 약속이 성취된 후에 비로소 마지막 심판이 행해지고 신실한 자들이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2

 

교회에 대한 콘스탄틴 황제 전의 마지막 대박해를 선동했던 디오클레티안 황제의 통치 중에 페타우의 빅토리누스(304년경 순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요한계시록 주석을 매우 강한 미래주의적인 시각에서 썼다. 빅토리누스는 요한계시록에서 자신과 동시대의 전투적인 교회에 관한 이미지를 보았고 지구 상에서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의 시작을 기다렸다. 성경학자인 제롬(420년 사망)은 빅토리누스의 천년에 관한 문자적 견해를 거부하면서 “(천년왕국은) 결코 지상의 왕국이 아니며 단지 천상의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천년이라는 우화는 멈추어야 한다.”3 제롬은 요한계시록의 천년에 관한 본문을 영적으로 보고 여러 차원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빅토리누스의 주석의 많은 부분을 높게 평가하면서 편집자로서 변경을 가했다. 이 주석의 가장 불후의 기여는 반복 이론 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요한계시록은 6장의 환난으로 시작하여 21장의 새 예루살렘으로 끝나는 일직선상의 종말의 사건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 대신 이 책의 변화무쌍한 순환의 환상 –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재앙 – 은 독자들에게 예표적인 사건들의 연속적인 발생을 제시한다. 이러한 통찰은 현재의 요한계시록의 해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4

 

이러한 미래주의적인 해석과는 대조적으로 동방,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인들은 요한계시록을 시간과는 무관한 진리로 해석했다. 그들의 최고 성경학자는 오리겐(254년경 사망)인데, 그는 성경의 영적인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다. 그는 성경에 많은 명백한 불일치들은 더 높은 진리를 지향하며 그 예언들은 엄격한 문자적 의미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오리겐은 아마겟돈 전쟁 (계 19:11-21)의 시기와 장소를 확인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해하기에 이 본문은 죄와 악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본문이 전사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 과 동일시한다는 것을 지적한다(계 19:13). 그러므로 거룩한 말씀이 백성들에게 진리의 빛을 줄 때 “하늘이 열리고” (계 19:11), 진리의 지식이 심령 안에 있는 모든 비이성적인 것과 사악한 것을 파괴할 때 승리가 획득된다고 한다.

 

*여기서 “전사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백마와 탄 자’ (한글개역), ‘white horse and He who sat on it’ (NASB)을 말한다.

 

이러한 해석의 흐름을 따른 오리겐의 제자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는 (264년경 사망) 그리스도가 “배(복부)와 낮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과 같은 육체적 탐닉에 헌신하는 천년왕국을 지상에 세우실 것이라는 생각을 격하게 공격하고 “어떤 더 깊은 의미가 이 말씀들 속에 있다”고 주장했다. 6

 

 

4 세기는 미래주의적인 해석과 시간과 무관한 (이상주의적인) 해석 사이의 일종의 화해가 있었다. 제롬의 편집이 빅토리누스의 종말론적인 주석에 대해 좀 더 시간과 무관한 방식으로 읽히도록 허용했다면, 도나티스트 작가인 티코니우스는 (400 년경 사망) 알레고리적인 해석에 넓은 의미의 역사적 현실주의의 감각을 더해 주었다. 티코니우스는 요한계시록이 도나티스트 그리스도인들이 겪은 로마 통치 하의 실제적인 박해를 예언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감추어진 채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장하기를 교회는 이미 천년 시대로 들어섰다고 했다. 계 20:2 은 말하기를 천년 시대는 사탄이 “결박”되었을 때 시작될 것이며 마 12:29 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축사(逐邪)가 이미 그분이 사탄을 결박한 것이며 왕국을 도래케 했음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이 두 본문을 함께 놓음으로써 티코니우스는 결론짓기를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천년왕국에 “첫 부활” (계 20:4-6)을 통해 들어갔는데, 그는 이것을 세례와 동일시했다; 두 번째 부활 (계 20:11-13)은 종말의 때에 몸의 부활일 것이라고 했다. 콘스탄틴의 개종과 기독교의 확장은 성도들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증거를 제공한다. 의인과 불의한 자들이 이 년왕국 시대 동안에도 교회 안에 나란히 존재할 것이다. 사탄은 “결박”되었지만 종말 때까지 몰살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430 년 사망) 이러한 방식의 계시록 읽기를 그의 하나님의 도성 (20 권)에 포함시켰는데 이를 통해 여러 세기동안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 열정적으로 미래의 천년 시대에 관한 의심을 반대했고 천년은 정확한 시간적 기간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것으로서의 시간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라고 제안했다(하나님의 도성 18.53; 20.7). 어거스틴은 티코니우스의 접근법을 많이 채용했는데 그것이 요한계시록을 우주적인 범위에서 읽음과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내적 삶에 적용 가능한 방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구원의 역동성과 은혜와 자유의지, 그리고 하나님의 예지”의 상호작용을 드러내는데, 이 셋은 “항상 나라와 시대와 개인에 걸쳐 흐른다: 야곱을 위해서도 바벨론 포로기의 세대에게도 바울에게도 또는 현재의 신자들에게도 이 셋은 동일하게 남아있다.” 7

 

 

 

 

 

1 See my article "The Distant Triumph Song: Music and the Book of Revelation," Word & World 12/3 (1992) 243-249.

CRAIG KOESTER's most recent book is Symbolism in the Gospel of John: Meaning, Mystery, and Community (Fortress, 1995).

Copyright © 1995 by Word & World, Luther Seminary, St. Paul, MN. All rights reserved.

 

2 See Justin’s Dialogue With Trypho 80-81 and Irenaeus’s Against Heresies 5.35.1-2. In response we should note that Revelation clearly affirms that God will be faithful to his promises, but indicates that the peaceable vision of Isa 65:17-25 should be located in the new Jerusalem beyond the millennium and last judgment (Rev 21:1-5)

 

3Quoted by Robert E. Lerner, “The Medieval Return to the Thousand-Year Sabbath,” in The ApocalypseintheMiddleAges, ed. Richard K. Emmersonand Bernard McGinn (Ithaca and London:CornellUni- versity, 1992) 51.

 

4See Günther Bornkamm, “Die Komposition der apokalyptischen Visionen in der Offenbarung Johannis,” Zeitschrift für die neutestamentliche Wissenschaft 36 (1937) 132-149; Adela Yarbro Collins, The Combat Myth in the Book of Revelation (Missoula: Scholars, 1976) 5-55.

 

5 Origen, Commentary on John 2.4 (Ante-Nicene Fathers, 10:325- 327).

 

6 Quotations of Dionysius are from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7.24.1 and 7.25.3-4.

 

7 See Paula Fredriksen,“Tyconiusand Augustine on the Apocalypse,” in The Apocalypse in the Middle Ages, 28.

 

 

cafe.daum.net/craca/O0EH/73

 

쾨스터 교수의 요한계시록 해석사 (1)

Word World 1995년 봄호에 기고한 쾨스터 교수의 요한계시록 해석사이다. 몇 번에 걸쳐 번역할 예정이다.  밀레니엄의 길목에서:요한계시록 해석의 역사CRAIG R. KOESTERLuther SeminarySt. Paul, Minnesota   

caf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