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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연구/요한복음

에베소서에 나타나는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의 영향 및 신학적 함의

by 구봉환 2025. 12. 26.

에베소서에 나타나는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의 영향 및 신학적 함의

1. 마태복음의 영향

1.1 하늘과 땅 주제의 연속성

마태복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하늘과 땅(οὐρανός/γῆ) 주제는 에베소서의 핵심 개념과 깊이 연결됩니다. Pennington의 연구에 따르면:

"마태복음의 하늘을 경외적 완곡어법으로 치부하는 대신, 우리는 첫 번째 복음서에서 그것의 위대한 문학적, 신학적 중요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홀로 서 있지 않으며 마태의 전체 내러티브의 빛에서 해석되어야 한다."[^1]

에베소서는 ἐν τοῖς ἐπουρανίοις(하늘에서)라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여 신자들의 영적 위치를 묘사합니다. 이는 마태의 하늘 언어와 연속성을 보입니다:

마태복음 에베소서
하늘의 왕국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하늘에 있는 영적인 축복 (엡 1:3)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늘에서 신자들의 자리 (엡 2:6)
하늘과 땅의 대조 하늘의 실재에 대한 참여

 

1.2 신비(μυστήριον) 개념의 공유

마태복음 13:10-11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신비를 알도록 허락받았다"고 기록됩니다.[^2] 이 개념은 에베소서 3장에서 발전됩니다:

"신비와 복음 사이의 연결에 대해서는 롬 16:26을 참조하라. 오브라이언은 또한 엡 3:3을 갈 1:12, 15-16과 비교할 때 이 '신비'와 '복음' 사이의 연결을 올바르게 인식한다."[^3]

 

1.3 구약적 기반의 공유

마태복음과 에베소서 모두 창세기와 다니엘서에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마태는 βίβλος γενέσεως라는 단어로 시작하여 '한 시작과 다른 시작, 한편으로는 우주와 아담과 하와의 창조, 다른 한편으로는 메시아에 의해 가져온 새로운 창조 사이에 병행을 그리기 위해'"[^4]

에베소서 역시 새 창조와 새 인류의 주제를 통해 창세기적 배경을 반영합니다.


2. 요한복음의 영향

2.1 하늘의 일과 땅의 일의 구분

요한복음 3:12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을 구분합니다:

"카슨은 '땅의 일'이 예수가 니고데모와의 대화 시작부터 언급한 새 출생이며, 그러한 새 출생이 지상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단순히 지상적이라고 주장한다... '하늘의 일'은 그러면 완성된 왕국의 화려함이며, 그러한 영광스럽고 말할 수 없는 통치 아래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이다."[^5]

이 구분은 에베소서의 하늘 영역(ἐπουράνια) 개념과 직접 연결됩니다.

 

2.2 영의 역할과 인침

요한복음의 성령론은 에베소서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The life-giving factor is the Spirit (vi 63, vii 38-39), and that Spirit is given only after Jesus is lifted up to the Father (vii 39, xvi 7, xix 30, xx 22)."[^6]

에베소서 1:13-14에서 성령의 인치심은 이 요한적 사상의 발전입니다:

"성령의 인치심과 성령이 신자들의 상속의 ἀρραβών이라는 묘사는 또한 이러한 영적인 축복들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현재적인 경험과 미래의 완전한 실현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7]

 

2.3 영생의 현재적-미래적 차원

요한복음의 종말론적 긴장은 에베소서에 반영됩니다:

"Although Jesus insists that 'eternal life' is offered here below, he recognizes that physical death will still intervene (xi 25). This death cannot destroy eternal life, but obviously there must be an aspect of completeness to eternal life after death."[^8]


3. 신학적 함의

3.1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 신학

마태복음          요한복음          에베소서
    ↓               ↓               ↓
하늘의 왕국 → 영적 출생/거함 → ἐν Χριστῷ 연합
    ↓               ↓               ↓
신비 계시   → 성령의 역할   → 하늘에 앉음 (2:6)

에베소서 1:3-14의 축복송은 세 가지 요소를 통합합니다:

"우리는 신자들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성령으로 인치심, 그리고 성령의 축복에 참여함 사이의 친밀한 연결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성령의 축복, 그리고 신자들이 하늘의 실재에 참여함 사이의 연결도 발견한다."[^9]

 

3.2 묵시적 전통의 그리스도론적 재해석

에베소서는 유대 묵시 문학의 하늘 승천 모티프를 그리스도론적으로 재해석합니다:

"그의 하늘 승천의 결론에서 에녹이 주를 경배하는 것은 아마도 그가 천사 찬양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10]

그러나 에베소서에서 신자들의 하늘 참여는 개인적 신비 체험이 아닌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바울에게, 골로새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리스도가 완전히 부재했거나, 적어도 그들의 그리스도론이 심각하게 결핍되었다는 것이었다."[^11]

 

3.3 유대-이방 통합의 우주적 비전

마태복음의 보편주의적 선교 비전과 요한복음의 세계 구원 주제가 에베소서에서 통합됩니다:

"이방인들은 약속의 동료 상속자(συγκληρονόμα), 몸의 동료 구성원(σύσσωμα), 그리고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약속의 동료 참여자(συμμέτοχα)이다."[^12]

Pennington이 마태에 대해 관찰한 바와 같이:

"왕국의 하늘의 본질에 대한 강조는 그들과의 하나님의 언약의 표시로서 이스라엘 땅에 대한 유대인의 의존의 핵심을 찌른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은 전 세계적이며, 하늘과 모든 땅, 이방인을 포함한다."[^13]

 

3.4 어휘적 동의어성과 신학적 함의

에베소서의 ἐπουράνιοςοὐράνιος의 관계는 신학적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ἐπουράνιος와 οὐράνιος라는 용어가 '완전히', '전적으로', 그리고 '완벽하게' 동의어이며 따라서 '절대적 동의어'라고 주장한다."[^14]

이는 에베소서가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의 하늘 언어를 동일한 신학적 지시체로 사용함을 의미합니다.


4. 종합적 결론

4.1 세 문서의 신학적 수렴

신학적 주제 마태복음 요한복음 에베소서
하늘 개념 하늘의 왕국 하늘의 일 ἐν τοῖς ἐπουρανίοις
신비 계시 왕국의 비밀 아버지의 계시 그리스도의 신비
성령 역할 임마누엘 보혜사/진리의 영 인침/보증
종말론 이미/아직 영생의 현재/미래 상속의 보증
그리스도론 하나님의 아들 말씀/로고스 만물의 머리

 

4.2 도출된 핵심 신학적 함의

  1. 통합적 계시론: 에베소서는 마태와 요한의 하늘 신학을 종합하여 그리스도 중심적 우주론을 제시합니다.
  2. 실현적 종말론: 세 문서 모두 하늘의 현실이 현재 신자들의 삶에 침투한다는 "이미-아직" 긴장을 공유합니다.
  3. 그리스도론적 신비주의: 유대 묵시 전통의 하늘 승천 모티프가 ἐν Χριστῷ 연합으로 재해석됩니다.
  4. 보편적 구원론: 하늘의 언어는 민족적 경계를 초월하는 새 인류 창조의 비전을 담지합니다.

[^1]: Pennington.pdf, p.27
[^2]: Brannon-ephe.pdf, p.189
[^3]: Brannon-ephe.pdf, p.189
[^4]: Pennington.pdf, p.180
[^5]: Brannon-ephe.pdf, p.92
[^6]: John-I-XII.pdf, p.113
[^7]: Brannon-ephe.pdf, p.113
[^8]: John-I-XII.pdf, p.113
[^9]: Brannon-ephe.pdf, p.113
[^10]: Brannon-ephe.pdf, p.138
[^11]: Brannon-ephe.pdf, p.146
[^12]: Brannon-ephe.pdf, p.189
[^13]: Pennington.pdf, p.274
[^14]: Brannon-ephe.pdf, p.226

 

 

 

에베소서에서 “마태복음/요한복음의 영향”을 말할 때, 두 층위를 구분하는 게 안전합니다. (1) 직접 문헌의존(에베소서 저자가 마태/요한 텍스트를 읽고 차용) (2) 공유된 전승·어휘·신학적 공기(초기 교회 설교/예배/교리 교육에서 굳어진 주제들이 서로 닮은 형태로 정착). 아래는 제공된 발췌문들이 강하게 지지하는 범위에서, 에베소서에 나타나는 마태적/요한적 ‘흔적’을 정리하고 그 신학적 함의를 추론한 것입니다.


1) 마태복음이 에베소서에 “어떻게” 스며드는가

A. “하늘-땅” 루브릭의 공유: 왕국 언어가 우주적 통치 언어로 확장됨

Pennington이 강조하듯 마태복음의 하늘(οὐρανός)은 단순한 “하나님 이름 회피”가 아니라 하늘과 땅의 대비/연결이라는 큰 문학·신학적 기획 속에서 작동합니다(환유로서의 하늘, 하늘-땅 주제의 반복) (Pennington.pdf, p.27). 이 루브릭은 에베소서의 핵심 문장들과 구조적으로 맞물립니다.

  • 에베소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하늘에 속한 복”으로 전면에 세웁니다(엡 1:3). Brannon은 여기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성령의 인치심–하늘의 실재 참여”가 밀착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Brannon-ephe.pdf, p.113).
  • 또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경륜을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총괄”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엡 1:10). 이것은 마태가 “하늘(하나님의 영역)과 땅(인간의 영역)”을 대조·연결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는 방식과 신학적 결이 같습니다(Pennington.pdf, p.27).

여기에 Brannon의 어휘 논증이 연결고리를 더 단단히 합니다. 그는 에베소서의 ἐπουράνιος(‘하늘에 속한/하늘에 있는’)와 οὐράνιος가 절대적 동의어라고 주장합니다(Brannon-ephe.pdf, p.226). 즉, 마태의 οὐρανός-언어(“하늘”)와 에베소서의 “하늘에 속한”(ἐπουράνιος) 언어를 실질적으로 같은 지시 영역(땅과 구별되는 하늘)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 있게 됩니다.

함의(추론): 에베소서는 마태적 “하늘-땅” 신학을 단지 반복하지 않고, 그것을 교회-그리스도론적 우주 통치 언어로 확장합니다. 왕국(마태)의 핵심 직관(하늘의 통치가 땅에 관철됨)이, 에베소서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이 통일되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으로 재정식화됩니다.


B. “신비(μυστήριον)”의 공개/제자-공동체 중심 계시 구조

Brannon은 묵시 전통에서 “감추어진 것이 이제 의인들의 유익을 위해 공개된다”는 구조를 논하면서, 공관복음의 “하나님의 나라의 신비를 알도록 허락” 받은 제자 전승(마 13:10–11 등)을 직접 연결합니다(Brannon-ephe.pdf, p.189).

에베소서 3장도 동일한 계시 구조를 가집니다. “감추어졌던 신비”가 이제 드러났고, 그 내용은 특히 이방인의 동등한 상속/한 몸/동참입니다(Brannon-ephe.pdf, p.189의 논지와 22번 주석 요약).

함의(추론): 에베소서의 ‘신비’는 비밀지식(엘리트 체험)이 아니라, 마태의 제자 교육처럼 공동체를 형성하고 선교적 경계를 재구성하는 공개된 계시로 기능합니다. 곧 “신비”는 교회를 분열시키는 코드가 아니라, 교회의 보편성(유대-이방 통일)을 정당화하는 계시입니다.


C. 성전/공간의 재정의: “하늘의 통치”가 지리·민족 중심성을 해체

Pennington은 마태의 하늘 언어가 “신성한 공간의 탈영토화”와 연결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신성한 공간은 더 이상 특정 땅/성전의 회복으로만 정의되지 않고, “예수께서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계신 곳”으로 확장됩니다(마 28:20을 인용하며) (Pennington.pdf, p.274).

에베소서도 유사하게, 유대-이방의 동등 접근과 통일을 말한 뒤 교회를 성전(거처)로 묘사합니다: “주 안에서 성전으로 자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처”(엡 2:20–22). Brannon은 이 대목이 유대화 압력 가능성과 맞물리며(‘소위 할례’), 교회를 새로운 실체/성전으로 세우는 논증이라고 정리합니다(Brannon-ephe.pdf, p.156).

함의(추론): 마태와 에베소서는 공통으로 “하나님의 통치/임재”를 지리·민족·표지(할례 등)에 묶지 않고, 그리스도/성령을 통해 형성된 공동체로 재배치합니다. 에베소서에서 이것은 특히 “한 새 사람/한 몸/성전” 논리로 제도화됩니다.


2) 요한복음이 에베소서에 “어떻게” 스며드는가

A. “하늘의 일/하늘의 것”과 성령: 현재적 참여 + 미래적 완성(이미/아직)

Brannon은 요 3장의 “땅의 일/하늘의 일” 구분을 언급하며(니고데모 대화), 하늘의 일에 대한 예수의 직접 가르침이 막히는 맥락을 소개합니다(Brannon-ephe.pdf, p.92). 요한 주석 발췌에서는 생명을 주는 핵심이 성령이며, 그 성령은 예수의 “들려 올려짐/아버지께 감” 이후 주어진다는 흐름이 강조됩니다(John-I-XII.pdf, p.113). 또한 요한은 영생이 “지금” 주어지지만, 죽음 이후의 완결성이 따로 있음을 인정합니다(John-I-XII.pdf, p.113).

에베소서 1:3–14의 구조는 이 요한적 패턴(현재적 생명/성령 + 미래적 완성)을 놀랍도록 닮습니다.

  • 성령은 “인치심”이며 동시에 상속의 “보증/아르라본”(ἀρραβών)입니다. 즉 지금 경험되지만 미래를 담보합니다(Brannon-ephe.pdf, p.113).
  • 그리고 그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이며, 하늘과 연결된 실재로 묘사됩니다(Brannon-ephe.pdf, p.113).

함의(추론): 에베소서의 구원론/성령론은 요한복음과 마찬가지로 강한 ‘이미/아직’ 구조를 띱니다. “하늘”은 단지 사후 장소가 아니라, 성령을 통해 현재적으로 참여되는 영역이지만, 동시에 상속의 “완전한 실현”은 미래로 남습니다(Brannon-ephe.pdf, p.113; John-I-XII.pdf, p.113).


B. 승귀(들려 올려짐/승천) 이후의 선물: 성령(요한) ↔ 은사/충만(에베소서)

요한 주석 발췌의 핵심 한 줄은 이것입니다: “성령은 예수가 아버지께 들려 올려진 뒤에 주어진다”(John-I-XII.pdf, p.113). 에베소서에서도 구원의 ‘배치’가 그리스도의 높아지심 이후 공동체에 주어지는 선물로 전개됩니다(엡 1:20–23; 4:8–10; 2:6).

Brannon이 장기적으로 추적하는 또 하나의 축은, 바울/에베소서의 “하늘 참여”가 당시 유대 묵시·신비 전통(하늘 보좌, 승천, 참여)과 접점이 있다는 점입니다(예: 에녹 승천 전통, 하늘 보좌 중심 전승) (Brannon-ephe.pdf, p.138). 그런데 요한은 “하늘에 속한 계시/참여”의 통로를 승천 체험이 아니라 승귀한 그리스도와 그가 주시는 성령에 고정합니다(John-I-XII.pdf, p.113). 에베소서도 결과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수렴합니다(하늘 참여의 기반을 “그리스도 안에서/성령으로” 재정렬) (Brannon-ephe.pdf, p.113).

함의(추론): 에베소서에서 하늘 참여는 (어떤 종교적 엘리트의) 천상 여행이 아니라, 승귀한 그리스도에 연합한 교회가 성령으로 누리는 공동체적 참여입니다. 이것은 Brannon이 다루는 “유대 신비주의적 압력/유사 담론”을 그리스도론적으로 재배치하는 효과를 냅니다(유사한 문제의식은 골로새 논의에서도 드러남) (Brannon-ephe.pdf, p.146).


C. “영광”의 목적론: 계시/구원의 종착점이 찬양이 됨

요한 주석은 가나 표적에서 “그가 영광을 드러냈다”는 표현을 요한 전체의 ‘참 영광’ 주제와 연결합니다(John-I-XII.pdf, p.241). 에베소서 1:3–14는 찬양으로 시작해, 선택/구속/인치심의 목적을 반복적으로 “그의 영광의 찬송”으로 수렴시키는 유명한 구조를 가집니다(엡 1:6, 12, 14). Brannon이 인용한 대목도 그 단락의 핵심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성령–하늘 참여”의 결속으로 읽습니다(Brannon-ephe.pdf, p.113).

함의(추론): 에베소서에서 구원은 단지 죄의 해결이 아니라, 요한적 의미에서 “영광의 계시”처럼 하나님 중심의 목적론(도كس올로지)으로 조직됩니다. 교회는 그 영광을 “지금”(성령/복) 맛보고, “마침내”(상속의 완성) 충만히 누리는 방향으로 존재합니다.


3) 최종 종합: 에베소서의 신학적 결론(마태 + 요한 + 묵시 전승의 재배열)

제공된 자료들을 한데 묶으면, 에베소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마태적·요한적 요소를 흡수(혹은 공유 전승을 통해 공명)하면서 독자 신학을 도출합니다.

 

1) 하늘-땅의 통일은 ‘왕국’의 또 다른 말이다
마태가 하늘-땅 루브릭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듯(Pennington.pdf, p.27), 에베소서는 그 통치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을 총괄”하는 경륜으로 우주화합니다(엡 1:10). 이때 “하늘에 속한”(ἐπουράνιος) 언어는 실제로 “하늘”(οὐράνιος)과 같은 지시 영역을 갖는다고 주장될 수 있어(Brannon-ephe.pdf, p.226), 마태와의 언어적 접점도 강화됩니다.

 

2) 계시(신비)는 엘리트 체험이 아니라 교회 형성의 공개 원리다
마태의 “나라의 신비를 제자들에게 허락” 구조(마 13:10–11)가 “감추어졌다가 드러남”이라는 묵시적 논리와 결합되고(Brannon-ephe.pdf, p.189), 에베소서에서는 그 내용이 “이방인의 동등한 참여”로 구체화됩니다. 결과적으로 신비는 분열이 아니라 화해/통일의 계시입니다.

 

3) 성령은 ‘지금의 하늘 참여’를 가능케 하면서 ‘미래’를 보증한다
요한에서 성령은 예수의 승귀 이후 주어지고(John-I-XII.pdf, p.113), 영생은 현재적이되 죽음 이후의 완결성을 남깁니다(John-I-XII.pdf, p.113). 에베소서에서도 성령은 현재적 인치심이자 미래 상속의 보증이며(Brannon-ephe.pdf, p.113), 이로써 교회는 “이미 하늘에 속한 복”을 살면서도 “아직”을 기다리는 공동체가 됩니다.

 

4) 묵시적 ‘하늘 참여’는 그리스도론적으로 재배선된다
Brannon이 보여주듯 당시 전승에는 하늘 보좌/승천/예배 참여(에녹 등)라는 강력한 상상력이 있었지만(Brannon-ephe.pdf, p.138), 에베소서는 그 참여를 그리스도와의 연합 + 성령로 재정의합니다(Brannon-ephe.pdf, p.113). 이것은 ‘하늘 체험’ 담론을 교회 중심, 그리스도 중심으로 정렬하는 신학적 효과를 냅니다.

 

원하면, 위의 종합을 바탕으로 (a) 에베소서 본문(1–3장) 구조표를 “하늘/땅–신비–성령” 세 축으로 다시 그려서, 마태·요한과의 접점을 절 단위로 더 촘촘히 매핑해 줄 수도 있습니다.